31. 조희성 선생과 형제지간을 맺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안기부에서 조사 받을 때 북한 영해를 벗어나기 직전 돌고래를 잡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안개가 씌워져서 돌고래 잡는 걸 포기하고, 선실로 들어가 시야가 가리니까 암초에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조심 운전을 했었다.
그때 이북에서는 김일성이는 나를 잡아오라고 전투비행기 수십 대를 띄었다고 안기부 조사관들이 말했다.
그러면서 “신형전투기 레이다는 구름 속에서도 다 볼 수 있는데 어떻게 해서 당신을 못 찾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당신 이수근 같은 위장간첩 아니냐”고 의심을 해서 곤욕을 치렀다.
그런데 조 선생이 “레이다도 안 통하는 안개를 내가 씌워줬는데, 그렇게 몰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조 선생이 아무리 그렇게 이야기해도 무슨 재간이 있어서 자기가 구름 안개를 하루 종일 씌었다고 하느냐고 선뜻 믿지 않았다.
그 후에 친한 안기부 직원 송과장한테 “당신 승리제단 알아?”라고 물었더니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 “영생교라고는 아느냐?” 했더니 “그건 내가 들어본 것 같다. 영생교라는 건 아주 안 좋은 교회라고 들었다.”
“거기 교주를 아느냐?”
“모른다”
그러면 “안기부하고 거기 아는 사람들이 있느냐? 영생교하고 연관 되는 게 있느냐?” 하니까 모르겠다면서 자기가 한번 알아본다고 하였다.
그 후 며칠 지나서 전화했더니 영생교 하고는 안기부와 상관이 없다고 답했다.
또한 조 선생 옆에서 오래 지내면서 파악해보니 조 선생은 경찰, 안기부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분이었다.
그쪽에 아는 사람도 없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쪽에 구걸할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조 선생이 안개를 씌운 게 틀림없이 맞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조 선생이 어떻게 안개 구름이 하루 종일 내가 탄 배를 씌워서 왔으며, 신의 조화가 아니고서는 내 배가 신형전투기 레이다에도 걸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참으로 신기하게 생각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설마 그럴까 의심을 했었다.
또한 조 선생은 자기가 풍운조화를 마음대로 하고, 전 세계 움직임을 좌지우지하고, 태풍도 막고, 공산주의도 없애고 등등 이상한 말씀을 자꾸 했다.
어떨 때는 믿어졌다가 어떨 때는 의심이 들고 그랬는데 한번은 조 선생에게 “태풍도 막고 다 이런다는데 왜 서해안으로 태풍이 들어와서 손해본 거 많지 않느냐?
완전히 막지 못했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런 것들은 소소한 거고, 기본적으로 크게 나라에 피해를 주는 거 이런 거는 막아야지”라고 조 선생은 말씀했다.
그래서 가만히 집에 가서 생각해 보니까 ‘저분이 뭔가 확실히 있기는 있구나. 그러면 다니면서 좀 믿어봐야 되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알아보는데 조 선생은 내가 의심 많은 거 아는 모양인지 계속해서 나를 조 선생 사무실로 불렀다.
아마 일 년 가까이 조 선생 사무실에서 아무것도 할 것도 없는데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조 선생을 찾아오는 손님들과 신도들을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지루해서 “이제는 가야 되겠다”고 일어서면 조 선생은 “조금 더 계시라”고 붙잡아서 그렇게 일 년 가까이 있었다.
한 일 년 지나니까 조 선생께서 “이제부터 나하고 형제지간을 맺자. 김 선생이 내 동생하는 게 좋겠다. 이제부터 날 형님이라고 해라”라고 하셨다.
사실 그때는 조 선생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승리제단 신도들이 모두 다 “주님”이라고 부르니 ‘주님을 어떻게 형님이라고 하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주님이 형제간을 맺자니까 맺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부터 옆에 사람이 없을 때는 주님을 “형님”이라고 했다.
사모님이 옆에 있을 적에는 “주님”이라고 했다.
주님은 공과 사 구별이 확실한 분이었다.
단둘이 있을 때에는 자상한 형님처럼 동생 대우를 해주셨고, 공적인 자리에서는 공적으로 대하셨다.
주님이 딴 세상으로 가시고 나니까 ‘주님은 확실히 하늘의 사람이었구나’라고 믿어진다. 계실 때는 의심만 했지만…
하루는 주님께서 “승리제단은 삼대적덕지가 후손이 아니면 나올 수가 없다고 격암유록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가만히 내 과거를 생각해 보니 나도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천성이 어려운 사람을 보면 안 도와주고는 못 배기는 성질이 있다.
또한 일단 마음을 먹으면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성격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군 시절(아마 20세 전후라고 생각된다)에 사단 운수중대(수송부대)에 보름간 지원을 가서 쌀을 수송하였다.
그때가 가을이었는데 지나가는 길에 할머니가 이삭을 줍고 있기에 ‘먹을 게 없어서 저거를 줍나보다’ 안타깝게 보였다.
나는 차를 세워놓고 “할머니 집이 어디에요?” 물었다.
자기 집을 가리키는데 오막살이 집이었다.
“할머니 그거 줍지 말고 내가 쌀을 좀 줄 테니까 갑시다” 하니 “아니 쌀이라니!”하며 할머니가 놀라는 얼굴이었다.
“내가 가진 쌀이 있으니까 좀 주고 갈 테니까 가자” 하니 노인이 좋아서 차를 탔는데 할머니 집에 가보니 진짜 못 사는 집이었다.
우리집도 못 먹고 못 살아서 누나가 쑥을 캐다가 쌀가루에 버무려서 주는 걸 쓰다고 안 먹고 투정질 한 게 머리에 선하게 떠올랐다.
자루에 담아 놓은 댓 키로 짜리 쌀을 줄까 하다가 80키로 짜리 한 가마를 주어버렸다.
한 사오십 가마씩 실으니까 실어줄 때 잘못 세어서 준 거라고 할 요량으로 주어버렸다.
토방에 올려주고 군대에서 줬다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더니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다.
그렇게 하니까 맘이 참 편했다.
그런데 창고장이 얼마나 꼼꼼한지 그걸 다 세더니 한 포대 모자란다고 하였다.
그래서 “어디서 쌀을 흘리지도 않았습니다. 다 묶어서 왔는데 어떻게 흘리겠습니까?
그리고 난 쌀 싣는 것 몇 폰지 확인도 안 했습니다”하고 딱 잡아떼었다.
그랬더니 창고장도 믿어주었다.
근데 그게 재미가 들었다. 그래서 길 가다가 불쌍하다고 생각이 되면 쌀 한 포대씩 주곤 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드니 그러다 들키고 말았다. 5키로, 10키로 짜리는 운전대 옆에 싣고 다니면서 줬는데 쌀을 받은 사람이 어떤 군인이 줬다고 말했던 것이다.
운전병을 하나씩 추궁하는데 나에게도 “아무데 노친네한테 쌀 줬지? 몇 키로 줬냐?” 마치 아는 것처럼 물어봐서 “10키로 줬다”고 자백했다.
그걸로 혼이 나기는 했는데 영창에는 보내지 않았다.
지휘관들이 생각해보니 기껏해야 자루에 담은 몇 키로 짜리인데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더욱이 쌀을 주고 대가로 뭘 받아먹은 게 없으니까 용납이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욕만 실컷 먹었지만 못살고 없는 집안에 무언가를 준 게 가슴 뿌듯하고 흡족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