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남한에는 왜 이렇게 사기꾼이 많은가

조카가 목장을 하고 싶다고 한 중개인에게 돈을 주었다가 사기를 당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난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와주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

그래서 그런지 남한에 내려와서 사기도 많이 당했다. 자본주의 물정을 제대로 모르는데다가 수중에 돈도 있지, 사기꾼들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남한에는 왜 그렇게 사기꾼이 많은지 의아한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아무튼 사기당한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소 목장 하라고 조카에게 돈을 주었는데

함평 조카는 남해에 기도원을 지을 때 수고를 많이 했다.

그래서 그 보답으로 뭔가를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조카가 고향에서 소 목장을 하겠다고 해서 돈을 좀 주었다.

이상수라는 거간꾼이 1억 6천이면 캐나다에서 소 150마리 가량 사올 수 있다고 하기에 돈을 주었는데 암만 기다려도 소가 왔다는 기별이 없었다.

어떻게 됐느냐고 물어보면 캐나다에서 떠났으니까 며칠만 있으면 도착할 거라고 자꾸 거짓말을 하더니 하루는 인천항에 소가 와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조카보고 가보라고 했는데 바다 한 가운데 정박해 있는 배를 가리키며 “저기 저 배에 소가 있는데 부두가 시원치 않아서 접안(接岸)을 지금 못하고 있다.

며칠 후 검열 끝나면 한다”고 말하더라고 이상수를 만나고 온 조카가 말하기에 “내가 바쁘니까 네가 알아서 잘 해”라고 했다.

그 후 며칠 있다가 “왜 아직도 소가 안 들어왔느냐”고 물어보니까 “인천항에서 문제가 있어서 일본에 가서 하역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하기에 “이게 말이 되느냐. 사기꾼이다” 해서 검찰에 가서 신고하여 즉각 잡아들였는데 모든 게 다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눈 감으면 코 베 간다는 말 그대로 된통 사기당한 것이다.

그놈이 징역 1년 살고 나와서 경기도 쪽 어딘가에 가서 페트병 만드는 공장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거 하다가 얼마 안 있어서 암으로 죽었다.

내 돈 떼어먹더니 죽은 것이다.

앞에서 남해에 기도원을 지었다고 말했는데 그 기도원도 사기를 당해서 날렸다.

그것도 목사한테 당했다.

사실 남해에 기도원을 지었을 때는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으면 기왕지사 열심히 믿어보기 위하여 한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는 사업을 하면 복을 받는다고 목사들이 말했기 때문에 기도원을 한 거였다.

그렇다고 내가 기도원을 직접 운영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기도하기 좋은 곳을 제공해 주려는 목적뿐이었다.

그래서 부친께서 다도해 풍광의 아름다움을 늘 말씀했던 기억을 되살려 남해의 그곳을 기도원 터로 매입하였던 것이다.

나는 주로 탈북강연을 다니니까 목사와 권사를 고용하여 기도원을 운영하게 하였다.

기도원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들어오는 헌금만으로는 운영비가 모자라 강연으로 받은 돈을 운영비로 많이 넣었다.

그러다가 앞에서 말한 대로 기독교에 회의를 느낀 후 기도원 운영을 중단하여 목사를 내보낸 뒤 관리인을 두고 있다가 승리제단에 오게 되었다.
하루는 남해 기도원을 운영하였던 함 목사가 자기 사정을 얘기하였다.

자기 아들이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는데 꼭 돈이 필요해서 그러니 기도원을 담보로 돈을 빌려달라, 아들이 그러는데 40일 뒤에 돈이 들어오니까 담보를 해서 미리 돌려 쓴 후 갚을 테니까 그렇게 해달라고 사정을 하였다.

자기는 포항에서 교회를 하는데 돈이 없다는 것이다.

몇 년 동안 같이 일하던 사람이니까 좀 찜찜하지만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런데 함 목사는 4억원을 대출받아서는 필리핀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그래서 검찰에 고소를 했더니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함 목사 부인이 집에 한번 와서는 언제 갚겠다고 해서 “들어와라 내가 풀어줄게” 했는데 미적미적 들어오지 못하고 그러다가 필리핀에서 죽었다.

죽으라고 내가 악담도 한 것도 아닌데 죽었다.

내 돈 떼먹은 자들은 다 죽더라

나는 자연을 좋아하는지라 경기도 분당의 동흥빌라 4층에서 살았는데 그곳 생활은 매우 답답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 이사할 곳을 찾아 경기도 광주의 산을 둘러보니 괜찮은 곳이 있어서 땅 주인 김기동 씨를 수소문해서 만났다.

그들 부부는 남편은 독일에 광부, 부인은 간호사로 갔다 온 사람인데 통일교 신자였다.

김 씨는 나보다 10살 아래였는데 나는 동흥빌라에 살고 있는데 거기서 살기 안 좋아서 시원한 산골에 살고 싶다고 하면서 당신네 밭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그러라고 허락해 주었다.

김 씨는 김 선생이 여기 와서 살면 앞으로 땅 팔기가 좋을 것이니 자기가 불도저로 터를 밀어 주겠다고까지 하면서 호의를 베풀었다.

그래서 그 사람 소유의 밭 300평을 얻어서 처음에는 공짜로 쓰다가 마지막에 평당 15만원씩 내라고 해서 1200평 값 3000만원을 주고 거기에 집을 지어서 살았다.

컨테이너 12미터짜리 두 개를 사이에 두고 가운데를 슬레이트로 씌워서 거실이 되게 하였다.

각 컨테이너에서 3칸이 나오고 해서 거기서 한 십 년 넘게 살았다.

그러다가 김 씨가 죽게 되자 부인은 내가 살고 있는 땅을 자기가 써야 되겠다고 해서 200평 값은 이미 냈으니 나머지 100평 값을 현 시가로 평당 100만원인데 1억을 달라고 요구하기에 그러면 내 집을 내줄 테니까 사라고 하였고, 우여곡절 협상 끝에 5000만원을 받고 집을 철수하고 자그마한 컨테이너에 내려가서 살고 있다.

한편 나를 승리제단에 인도한 이종원 사장이 인천에 상가를 한 채 지으면 수입이 괜찮을 것이라고 하여 그 말을 믿고 1억 8천만원을 투자하여 상가를 건축하여 분양했다.

그 상가는 미국에 사는 어떤 노인과 같이 투자한 것인데 갑자기 이종원 사장이 병으로 죽게 되어, 다시 그 상가를 처분했는데 세금이 많이 나와서 손익을 따져보니 한 3000만원 꼬라박았다.

광주에서 컨테이너 집 대가로 받은 5000만원도 여기에 들어갔다.

이 사장은 자기가 월세를 다 받아먹고 내 돈을 마음대로 요리하다가 갑자기 병이 들어 죽게 된 것이다.

사기 당한 이야기를 하니 마음이 좀 언짢아진다.

그러나 어쩌랴! 팔자가 그러려니 할 따름이다. 그나마 남한테 억울하게 한 사람의 말로(末路)는 안 좋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만족해야지….

 

김만철 선생 탈북기 제32화 PDF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