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북한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

대학병원에 있을 때인데 어떤 농부를 진찰해 보니 폐농양이 걸려서 폐가 막 썩어가고 있었다.
폐농양은 항생제만 가지고는 치료가 안 된다.
꼭 수혈을 해줘야 한다.
수혈하여 어느 정도 회복된 후 항생제를 써야 낫지 그렇지 않으면 안 낫는다.
그 농부는 사십 조금 넘은 아주 착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평민들한테는 수혈을 거의 안 해준다.
간부용 예비 혈액은 비치해 놓더라도 평민들에게는 피가 부족하다고 안 해준다.
나는 사람을 살려야 된다는 생각에 그 폐농양 환자에게 수혈을 하며 치료하기 시작했다.
치료하다보니 점점 차도가 있는데 퇴원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 병원은 원래 한 달 이상 입원 안 시키고 퇴원시켰다가 다시 입원시키라는 규정이 있다.
그렇지만 내가 붙잡고 40일 넘어 집중치료를 해줘서 살렸다.
사람 살리는 게 중요하지 그까짓 규정이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규정을 어겼네 뭐네 하면서 시비질 하는 놈들 있고 별놈 다 있었다.
그러나 들은 체 만 체 하고 그렇게 해줬다.
물론 수혈환자 이름을 그 농부로 해서는 안 된다.
수혈이 필요 없는 간부 이름을 올려서 혈액을 받아서 그 간부에게 수혈했다고 하고 평민들에게 수혈을 해준다.
그래야 시비질을 못한다.
간부들도 악질 말고 마음이 좋고 친절한 간부이름으로 올려놓는다.
우리 대학병원 약국장(약국 책임자)이 아주 깐깐하다.
한번은 혈액 처방을 간부이름으로 올려놨는데 약국장이 처방전을 들고 와서 “그 사람 병원에 없는데 왜 올렸느냐”고 따졌다.
그래서 “전번에 수혈한 건데 그때 수혈해 놓고 처방전 내지를 못한 거다”라고 둘러말하면서 “제발 시비질 하지 말라”라고 당부했는데도 계속 걸고넘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간부한테 약국장이 자꾸 시비한다고 혼 좀 내 주라고 전화를 했다.
그 간부는 약국장을 불러서 의사를 그렇게 믿지 못하면 어떡하느냐 하면서 혼을 냈다.
그 다음부터 처방전이 가면 약국장은 얼른 해줬다.
눈치를 보니 당간부한테 많이 혼난 모양이었다.
어쨌든 그 사람이 퇴원한 이듬해에 소두 쌀 한 말(10키로), 강낭콩 몇 되박을 집사람에게 갖다 주고는 가버렸다.
그 사람이 병원에 있으면서 아마 내 성격을 파악했던 모양이다.
뇌물이나 선물 등 이런 것 가져오면 잘 받지도 않거니와 설사 받더라도 우리 과 직원들 전부, 심지어 간호원들까지라도 조금씩이라도 다 나눠준다.
그러니까 집으로 가져온 거였다.
집사람에게 누가 가져왔냐고 물었더니 모른다면서 편지가 있다고 하였다.
편지를 보니까 누구인지 잘 몰랐다.
그렇게 치료해서 살려준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농부였다.
감사해서 가져온 것이다.
북한에서는 배급제라 자기 먹을 게 부족하지만 농부들은 약간 여유가 있다.
전부 협동조합에서 농사를 하지만 농민들한테만 채소 심어 먹으라고 각 개인 당 30평을 준다.
일종의 농민우대정책이다.
그런데 참 웃기는 건 농장 밭은 소출이 하나라면 자기 밭에는 열 배 가량 난다.
열심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기 소유니까 가꾼다.
심지어 농장 비료를 훔쳐다가 허연 것이 눈에 안 보이게 하기 위해서 물에다 타서 준다.
농장은 시퍼렇게 풀이 나더라도 자기 밭은 풀 하나도 없이 싹 뽑는다.
30평에 한해서 아주 알뜰히 가꾼다.
이 점으로도 공산주의가 왜 망할 수밖에 없는지 그 원인을 알 수 있다.
거기서 난 곡식을 그 농부가 가져온 것이다.
집사람은 그 다음날부터 농부가 가져온 것으로 매일 아침 쌀밥에 강낭콩을 놓고 해서 밥을 짓고 애들 도시락도 그걸로 싸주고 하였다.
소위 5호담당제라고 하여 다섯 가구에 하나씩 조장이 있어서 밤낮 문 열어보고 감시를 하는데 쌀밥을 먹으니까 뇌물을 받아먹었다고 병원 보위부에 직접 신고를 했던 모양이다.
하루는 책임보위원이 나를 불러다가 종이를 꺼내놓고 비판서를 쓰라고 하였다.
“내가 잘못한 거도 없는데 무슨 비판서를 쓰냐” 반문했더니 그저 잘못한 거 있으면 쓰라고 다그쳤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어디 있나 싶어서 학습 게을리 한 거, 수령께 충성으로 하지 못한 거 썼더니 그게 아니라는 거였다.
뇌물 받아먹은 거랑 다 쓰라고 하였다.
그래서 재작년에 이만저만 해서 치료해줬는데, 금년에 감사의 표시로 가져온 것인데 잘못했다고 적었다.
그랬더니 별다른 문책 없이 “그러면 됐다. 비판서 써놓고 가라”고 하여 돌아왔는데 며칠 후에 강의하러 정문으로 들어가는데 고학년 학생들이 나를 쳐다보고 자꾸 웃는 것이었다.
강의시간에도 학생들이 수군덕거리고 웃었다.
왜 그런가, 의아했는데 대학병원 정문 양쪽으로 설치된 게시판 중간쯤에 나를 떡 그려놨는데. 배가 산 만하게 나온 모습에 배꼽이 툭 튀어 나온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그려놓았다.
그림 옆에다가는 개인 이기주의자 김만철 뇌물 받아먹었다고 적어 놨다.
참 난감했다. 그 벽보를 아마 6개월 이상 붙여 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그 비판서 자료를 초급당으로 넘겼고, 회의 때마다 늘 개인이기주의자 김만철은 뇌물 받아먹었다고 보고를 하였다.
그거 얼마나 골치 아픈 건지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사람 아주 주눅이 든다. 당회의 할 때 보고서를 쓰는데 그때마다 내 이름이 올라가는 것이다.
그렇게 한 열댓 번 정도 개망신을 당했다.
너무 심란해서 의사할 생각 손톱만치도 안 들었다.
보고서는 매달 나오지, 벽보는 대여섯 달 붙어 있지, 참으로 난감했다.
북한에서는 질질 물고 늘어져서 사람 못 살게 군다.
그거 얼마나 피곤한지 모른다. 두들겨 패면 한번 맞으면 그만이지만 계속 회의 때마다 언급이 되니 체면이 많이 깎인다.
난 뇌물 잘 받아먹는 사람이 아니다.
나보다 더 잘 살면 뇌물을 받아먹을 수도 있는데 나보다 못사는 사람한테서 받아먹는다는 게 마치 벼룩이 잔등이에다 짐 싣고 가는 것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짓 안 한다.
이런 내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우리 과 직원들도 내가 뇌물 받아먹었다는 그 보고서를 믿지 않았다.
게시판에 개인주의자 김만철이라고 붙여놔도 믿지 않았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믿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