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북한에서 있을 때 에피소드 둘 (약초캐기)

물고기가 내눈과 마주치자 미끼를 안무는 것을 알고 나무와 풀로 변장을 하니 낚을 수 있었다

북한에는 농촌동원기간이라는 게 있다.

사무원 같은 비생산 노력들은 ‘농촌 전투에로 농촌동원에로’라는 구호 아래 봄 가을 한 번씩 한다.

봄에는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가을에는 가을걷이 전투라고 해서 9월 중순에서 10월 중순까지 한 달간 한다.
내가 근무한 청진대학병원에는 농촌동원기간에 약초를 캐러 간다.

약초로 생약을 만들어 환자들에게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과 의사로서 부과장을 했는데, 약초 캐러 갈 때는 우리 과 직원 사오십 명 중 절반은 약초 캐러 가고 나머지는 병원 업무를 본다.

만일 내가 약초 캐러 가면 과장은 남은 절반의 인원을 가지고 병원 업무를 봐야 한다.

또한 약초를 그들 몫까지 다 캐서 가져와야 한다.

일인당 말린 것으로 10킬로그램 할당 되니까 약 사오백 킬로그램을 캐야 된다. 그게 보통 일이 아니다.

목표량을 캔 사람들에게 여가시간을 주어 집에 가져갈 산채를 캐개했다

약초캐기를 시작한 처음에는 근처에서 금방 캘 수 있었지만 해가 갈수록 약초가 귀해져서 멀리까지 나가야 되었다.

나중에는 몇 백 리 떨어진 산골 골짜기까지 약초를 캐러 다녔다.

몇 백 리를 가야하니까 차로 이동한다.

마을에 가서는 마을 협동농장에서 소달구지를 빌려서 간다. 소달구지가 제일 좋다.

소달구지가 못 가는 곳은 발구라고 썰매처럼 생긴 것인데 좁은 길에 소가 발구를 끌고 가게 한다.

발구는 겨울에 쓰는 것인데 좁은 길에 쓰고 마지막에는 소 잔등에 싣고 간다.

약초 캐러 하도 많이 다녀서 약초가 있는 데를 척 보면 안다.

계곡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을 찾아 가서 천막을 치고 온돌을 놓는다.

텐트는 두 개 이상 쳐서 남녀 따로 자게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둘씩 짝을 져서 약초 캐러 보낸다.

나는 직원들에게 “동무들, 한 배낭을 채운 사람은 빨리 돌아오라우.

텐트로 와서 놀든지 자든지 나물을 캐든지 마음대로 하시오” 이렇게 말했다.

그랬더니 얼른 나물을 캐서 돌아온 후 자기 집에 가져갈 고사리 나물 등을 잔뜩 캐는 것이었다.

약초를 캐러 보낸 후 식당근무자 한 명을 남겨놓고 난 남자를 데리고 낚시하러 간다.

깊은 계곡 일급수 물에 그물도 치고 발도 만들어서 친다. 금방 한 바께스 잡을 수 있다.

그러면 더 이상 잡지 않는다. 그 정도면 두 끼 고깃국을 실컷 먹을 수 있다.

다른 과 사람들은 이런 요령을 모르니까 기껏해야 자기들이 캐온 산채로 밥을 먹는다.

다른 과 사람들은 삐쩍 말라서 돌아오는데 우리과 직원들은 전혀 마르지 않고 되레 얼굴에 윤이 난다.

부친께서 가맛골에 살 때부터 고기 잡는 요령을 많이 얘기해 주셨다.

그래서 낚싯밥으로 돌이끼와 메뚜기를 잡아서 단다.

그러면 사람과 낚싯밥을 잘 못 본 산천어라 쉽게 문다. 그곳 물은 아주 맑기 때문에 고기를 다 볼 수 있다.

그런데 고기들도 몇 번 잡히면 낚시찌를 잘 안 문다.

사람이 있나 없나 본다. 낚시하다 보면 고기하고 눈 마주칠 때가 많다.

바위에 앉아서 보면 딱 하고 쳐다본다. 그러고는 낚시찌를 물지 않는다.
그래서 ‘이것 봐라’ 하고는 가랑잎을 꺾어서 위장을 했다.

온 몸과 심지어 팔까지도 풀로 위장했다.

그랬더니 고기들이 사람인지 모르고 나무나 풀로 생각하고 잘 물었다.

고기보다 내가 머리가 조금은 좋은가보다.

얼마나 위장을 잘했는지 식당동무가 날 찾으러 왔는데 못 찾을 정도였다. “부과장님!” 하고 불러서 “왜?” 하고 일어서니까 깜짝 놀랬던 것이다.
멧돼지도 잡아먹기 위하여 올무도 놓는다.

멧돼지가 잘 다니는 길목이 있다. 부친한테 다 배웠다.

한 열 곳만 놓으면 열흘에 한 마리 정도는 잡힌다.

올무에 걸리면 멧돼지가 “꽥” 소리 지르고 난리다.

그대로 놔두면 죽는다. 그러면 그걸 텐트로 가져와서 남자들보고 털을 벗기게 하고 여자들한테는 요리를 시킨다. 멧돼지 고기는 설사도 안 한다.

한 마리 잡으면 며칠을 먹을 수 있다. 심지어 남을 때는 집에 싸 가게 한다.

바위에 널어놓으면 잘 마른다. 몇 킬로씩 가져갈 수 있도록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산채도 말린 거 한 마대기씩 무조건 가져갈 수 있도록 해줬다.

북한은 리당비서와 잘 절충하면 소달구지를 빌릴 수 있다. 그들도 대학병원의사들과 친해두면 좋은 약을 쉽게 얻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해준다.

북한에서는 절대 맨입으로 안 된다. 반드시 뇌물을 줘야 된다.

다른 사람들이 약초 캘 때 나는 멧돼지를 잡고 물고기를 잡았다

나는 목표량만 채우면 직원들을 마음대로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약초 캐러 산에 가면 남는 시간이 많게 된다.

밤에는 학습을 시켜야 되지만 난 학습 하나도 안 시켰다.

학습 하지 말라는 말은 안 하고 “부지런히 자체 학습하시오” 하면서 제목만 준다.

정치학습이 제일 하기 싫은 일이다. 순환기 내과에서는 학습시키니까 직원들이 죽어라 싫어했다.

그래서 억지로 시키지 않았다. 그래도 학습 안했다는 직원이 하나도 없다.

대신 성적은 잘 나와야 하니까 병원 일을 끝내고서 밤에 불러놓고 키포인트를 강의를 해 주었다.

사실 처음에 약초 캐러 갈 때에는 서로 구실을 붙이면서 못 간다고 하였다.

나는 그런 사람들은 한 명도 안 데려갔다.

그런데 먼저 갔다 온 여자 간호사와 간병사들이 산채와 고기를 가져온 것을 선전하였던 모양이다. 다음 번에는 서로 가겠다고 아우성이었다.

우리 과장은 소아마비로 한쪽 발을 못 써서 약초 캐러 가는 것을 굉장히 부담스러워 했다.

약초 캐는 것은 대학병원 원장도 초급당비서도 머리 아파하는 일이다.

약초를 부족하게 캐면 비판받는다. 부족한 것만큼 다른 노동을 나가게 하든지 그 대가를 치르게 한다.

그래서 부과장인 내가 약초 캐는 데에는 꼭 가야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안 가면 사람들이 안 따라가려고 하니까. 나처럼 소질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약초도 일등으로 많이 캐고, 잘 먹고, 나물도 한 사람 앞에 한 마대씩 가져가고, 심지어 과에 남아있던 사람들조차도 반 마대씩 주었던 것이다.

약초 캐러 가지 않은 사람들은 병원에서 밤잠 못 자고 치료해야 한다.

중환자들 때문에 집에도 잘 못 들어가기도 한다.

약초 캐러 가서 한 가지 잘못한 것은 인원이 부족하여 남녀 두 명씩 보냈는데 부화(연애)하는 일이 생겼다.

김세종이라고 대학 후배인데 간호사하고 붙여놨더니 산에서 썸씽이 있었고, 집에 와서도 부화하다가 들켰던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같이 둘이 붙여 놓으면 절대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김만철 선생 탈북기 제35화 PDF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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