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세번째 에피소드와 김일성에게 남긴 편지
세 번째 에피소드: 설탕 훔쳐 먹고 영창가다 남한 사람들도 군대생활 할 때에 춥고, 배고프고, 졸리고 그런다고 하는데 나도 군대생활 할
Read more세 번째 에피소드: 설탕 훔쳐 먹고 영창가다 남한 사람들도 군대생활 할 때에 춥고, 배고프고, 졸리고 그런다고 하는데 나도 군대생활 할
Read more북한에는 농촌동원기간이라는 게 있다. 사무원 같은 비생산 노력들은 ‘농촌 전투에로 농촌동원에로’라는 구호 아래 봄 가을 한 번씩 한다. 봄에는 4월
Read more대학병원에 있을 때인데 어떤 농부를 진찰해 보니 폐농양이 걸려서 폐가 막 썩어가고 있었다. 폐농양은 항생제만 가지고는 치료가 안 된다. 꼭
Read more앞에서 사기를 많이 당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사기 친 사람들을 원망은 하지 않는다. 그들도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모든 게 내
Read more앞에서도 말했지만 난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와주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 그래서 그런지 남한에 내려와서 사기도 많이 당했다. 자본주의 물정을 제대로
Read more앞에서 말했다시피 안기부에서 조사 받을 때 북한 영해를 벗어나기 직전 돌고래를 잡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안개가 씌워져서 돌고래 잡는 걸 포기하고,
Read more나는 서초동 창신교회 장로였다. 그 교회 신도는 삼사천 명이나 된다. 꽤 규모가 큰 교회다. 내가 교회를 안 나가자 교회에서는 나를
Read more내가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니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마도 많을 것이다. 앞에서(제28화) 말했다시피 북한의학에 대한 글을 써서 외국 교수 및
Read more현대아파트(현재 송파경찰서 앞)로 이사한 지 1년이 채 못 되어서 정부에서는 직장을 마련해 주었다. 병원이 아니라 국립보건원 산하 한국사회보건연구원이었다. 특임연구원이라는 직책을
Read more대만에서 비행기 타고 한국에 왔을 때 서울 전경을 처음 내려다 봤는데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집이 없는 데가 없어서 그때
Read more어젯밤 단장이 말한 대로 여의도 아파트에 갔다온 다음날은 아침 일찍 대구 쪽으로 출발해서 내려갔다. 대구에 점심시간 전에 도착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Read more단장은 쌀가게를 돌아본 후 “김 선생, 어디를 또 가보고 싶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믿기지 않는 현실을 다시 확인하고자 “사람들이 살고 있는
Read more그 이튿날 아침에 “아침식사 같이 합시다” 하며 단장이 찾아왔다. 안기부 소속 단장인데 아마 전날 조사받을 때 조사관들한테 역정을 내며 높은
Read more안기부 조사관들은 참으로 지독했다. 어제 물어본 것을 다음날 또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지겨울 정도로 물어봤다. 우리 막내(광호)한테 가서도 물어보고,
Read more울화통이 치밀었지만 관계자들이 아닌 사람한테 따질 수도 없어서 잊어버리기로 했다. 나는 어쩔 수 없다 싶으면 쉽게 체념하는 성격이라 금방
Read more이웅평이와 김신조의 말 중에 내가 가장 관심 있는 부분은 남조선에서의 생활에 관련된 부분들이었다. 우리 가족이 살아가자면 먹고 사는 게
Read more헬기를 타고 한 삼십 분 간 후에 어느 비행장에 내리더니 어떤 방으로 우리 식구들을 데리고 갔다. 거기서 군인들은 우리 식구들에게
Read more빨리 떠나야겠다는 내 말을 듣고 보안청장과 상의를 하겠다고 돌아갔던 보안청 과장이 저녁 때에 다시 와서는 “어디로 갈 것이냐?” 물으며
Read more북조선으로 보내달라고 단식을 하는 큰처남을 달래서 죽을 먹인 다음에 통역관을 오라고 하였다. 그에게 “빨리 어디로 가든지 떠나야 할 텐데
Read more조총련 백 부장의 북조선으로 돌아가자는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하고 선실 문을 박차고 나오니 함장도 따라 나왔다. 천신만고 끝에 북조선을 도망쳐
Read more일본인 통역관은 조사를 받으려면 자기들 본부가 있는 쓰루가 항으로 가야 된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남쪽으로는 갈 수 있지만 북쪽으로는 절대로
Read more청진호는 원래는 전투함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다 쏴 죽이겠다는 엄포를 놓을 수 있었다. 사실 수류탄을 비롯하여 기관총들이 많이 있었지만 출발하자마자 모두
Read more표류하기 시작한 지 몇 시간이 흘러갔다. 왜 이리 시간은 더디 흘러가는지… 캄캄한 밤에 파도만 수없이 와 부딪쳤고, 식구들을 쳐다보니
Read more구름인지 안개인지 잘 모르겠지만 갑자기 시야가 가려지니 방향키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선실로 갔다. 잘못하면 암초에 부딪칠 수 있다. 시야가 좁으니 속도를
Read more1월 14일 저녁, 그러니까 떠나기 바로 전날 직일관 근무 서러 가야 되는데 매형이 갑자기 찾아왔다. 둘째 누이 남편인데
Read more보초들에게 술을 먹이고 잠을 재우는 일을 습관처럼 2년 동안 했으니 이제 남은 건 고말산에 있는 레이다에 안 걸리게 도망치는
Read more경명환 정장은 내 말을 잘 들었다. 계급이 소좌(소령)니까 나보다 한 계급 아래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소탈한 나를 인간적으로 좋아했다. 경명환이하고
Read more특수부대 군 병원에 전근을 가보니 군의관이 6명밖에 안 되었다. 친구 인석이가 정해 놓은 대로 내과 외과 등 그대로 사용하였다.
Read more이렇게 모은 씨앗이 상당히 많았다. 곡물이 될 수 있는 거의 모든 씨앗을 모아서 탈출할 때 배에 싣고 왔는데 일본놈들한테
Read more가맛골과 부친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한 뒤 탈출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되겠다. 부친 김정규(金正奎)는 1901년생으로 일본 모 대학에서 치과를 졸업한
Read more이야기가 곁으로 좀 샌 것 같다. 집사람을 설득하는 과정을 말하다보니까 자연적으로 장모님을 비롯한 처갓집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더욱이 탈출할
Read more처가식구들을 우리 집에 데려온 후 청진시 당위원장에게 말해서 이사 허가증을 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살 집이 문제였다. 대한민국처럼 이사
Read more그 후에도 몇 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집사람한테 탈북하자고 말했지만 집사람은 온 가족이 다 탈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보위부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감시하고 있는데 어떻게 탈출하느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집사람과 나, 그리고 아이들 다섯 해서 우리 식구들이 일곱이고, 장모님과 처남 둘, 처제까지 해서 처가 식구가 넷이니 합이 11명이다.
Read more동독행 열차를 타지 않고 다시 북한의 가족들에게로 돌아왔지만 온통 머릿속은 ‘어떻게 북한을 탈출하나’라는 생각뿐이었다. 집사람과 조무래기 아이들을 몽땅 데리고
Read more30대 초반에 모스크바에 처음 갔을 때 김일성의 말이 거짓말임을 알았고, 또 침 공부하러 중국에 매년 한두 달 가량 머물면서 북한이 얼마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이러다보니 김일성 혁명사상을 배우고 가르치는 것에 대하여 회의가 생겨서 학습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 게다가 동철이가 총살되고 나니 북한을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수시로 꿈틀거리고 올라왔다.
Read more난 성분도 좋은 편이었다. 부친께서 일제 강점기에 독립군에게 자금을 지원해 준 항일 공로가 인정되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항일운동을 했다고 해서 항일운동한 사람들은 성분을 좋게 쳐주었다. 아내는 지주의 딸이라 성분은 좋지 않았지만 내가 북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아마 내 동생이 총살만 당하지 않았다면 난 의사로서, 대학교수로서 잘 살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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