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위대한 수령님께서 밤잠을 안주무시고 동무를 기다리고 있음메

일본인 통역관은 조사를 받으려면 자기들 본부가 있는 쓰루가 항으로 가야 된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남쪽으로는 갈 수 있지만 북쪽으로는 절대로 한 발자국도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빙긋이 웃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한 것 같았다.
그는 지도를 펴더니 “지도를 보세요.
쓰루가 항은 지금 있는 후꾸이 항에서 남쪽으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지 않습니까? 확인해 보시오”라는 것이었다.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 말대로 쓰루가 항은 남쪽에 있었다.
그래서 안심을 하고 “좋다. 그러면 가자.”하고 대답을 하고는 우리 배로 돌아왔다.
선실로 들어가자 우리 식구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어떻게 되었나, 궁금한 눈빛들이었다. “이제 합의를 다 했다.
절대로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야. 일본놈들이 배도 고쳐주겠다고 했으니 일본놈들 본부로 가자.
이제는 한시름 놓아도 좋을 것이다”라고 했다.
청진호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 합의를 본 후 일본 전투함이 청진호를 다시 묶어 연결시켰던 모양이다.
전투함에 끌려 두어 시간 후에 쓰루가 항에 도착했는데 사방은 캄캄한 밤이었다.
멀리 보이는 항구만 환하게 불이 켜져 밝게 빛나고 있었다. 멀리서 방파제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때 ‘방파제에서 일본놈들이 우리를 저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우리는 방파제 있는 데로는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정박하겠소. 딴 소리 마시오”라고 못 박듯이 말했다.
그랬더니 통역관이 왔다. 통역관에게 이러한 사정을 말했더니 “아, 좀 들어가면 좋은데요.
절대로 총 쏘는 일은 없을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 곧이들을 수가 없수다.”라고 말하자, “그럼,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하였다.
약 30분 쯤 지난 것 같았다. 갑판 위를 왔다갔다 하고 있었는데 큰 배가 우리 배로 접근하더니 옆에 척 하고 붙는 것이었다.
그 배 이름은 와까샤호라고 기억하고 있다.
조금 있으니 그보다 작은 군함이 오더니 또 우리 배 다른 편에 붙었다.
그러니 우리 배가 두 배 사이에 끼이게 되었고 부두 쪽에서 총을 쏘더라도 큰 배가 막아주는 형상이 되었기 때문에 안전할 거라고 생각 되었다.
그런 후 와까샤호 함장이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첫 모습이 아주 와일드하게 보였다.
우리 배에 내려와서는 거수경례를 하더니 뭐라고 인사를 하였다.
그러더니 우리 식구들 모두를 자기 배로 가자고 하였다.
알고 보니 보안청에서 나온 함대였다. 나는 안 간다고 했다.
그랬더니 껄껄 웃으면서 우선 자기 배를 보고 결정하라고 하기에 처남들을 데리고 와까샤호로 올라갔다.
와까샤호는 아주 큰 배였다. 배안에 운동장도 있고 강당도 있었다.
몇 천 톤급은 돼 보였다. 침실도 아주 멋지게 고급으로 꾸며져 있었다.
함장이 하는 말이 우리 식구가 여기에 있으면 안전하고 누가 와서 총 쏠 일도 없다고 했다.
또 경비까지 서고 있으니 걱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옆에서 통역관이 통역을 하지만 함장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한국말도 조금씩 알아듣는 것 같았고 절대로 불편하지 않게 해주겠다고 다짐을 하기에 믿음이 갔다.
그래서 가족들을 데리고 와까샤호로 이동했다.
와까샤호에서 생활하다 보니까 참 편했다. 다만 한 가지 애로사항은 밥을 너무 적게 준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밥을 조금씩 먹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조금씩 주는 것 같았다.
해서 내가 통역관에게 “우리는 북한에서 못 살고 못 먹어서 밥을 많이 먹으니까 많이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조금 있으니까 엄청 큰 통에다가 밥을 가득 가져왔는데 거의 3분의 2 정도를 먹어치웠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양껏 가져와서 정말 실컷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배부르게 먹어서 좋긴 좋은데 이후로 정말 골치 아픈 일이 계속 생겼다.
다른 것이 아니라 사방에서 우리를 만나겠다고 몰려들었던 것이다.
제일 먼저 그 이튿날 새벽부터 찾아온 사람들이 조총련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정말 빨리도 왔다.
함장이 와서는 조총련에서 만나자는 요청이 왔는데 한번 만나 보라고 하기에 나는 “안 만난다.
새벽부터 찾아와서 이게 무슨 짓이냐!” 하고 딱 잘라버렸다.
그랬더니 함장도 아무 말도 못했다. 왜냐하면 함장은 중립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있으니까 보안청 과장이라는 사람이 와서는 제발 조총련 쪽과 만나달라고 사정을 하는 것이었다.
“당신이 뭔데 나보고 만나라 말라는 거냐.
나는 안 만난다. 만날 필요성이 없다.
만나면 뻔하지 않느냐. 이야기 하다 보면 북한으로 가자는 말이 나올 텐데.”
이렇게 내가 말했더니 그 과장이 “아, 그러지 말고 10분만이라도 만나 보내버리자.
너무 시끄러워서 그럽니다.” 하는 것이었다.
“아, 당신들이 그것 하나 쫓아버리지 못하고 그러느냐. 당신들 군인이 아니었나?” 하니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자꾸 말이 퍼져 여론이 안 좋아진다는 것이다.
본인이 만나서 딱 잘라버리면 그 다음에 본인 요구니까 가라고 쫓을 수 있는데 그 전에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그러면, 딱 10분이다.”라고 허락을 했다.
해서, 아침 먹고 8시쯤에 조총련 부장을 만났다. 백영암이라는 자였다.
함장이 혹시나 해서 자기만이 쓰는 방을 빌려줘서 거기서 만남이 이뤄졌다.
내가 “도대체 왜 그렇게 야단이냐?” 하고 말했더니 조총련 부장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금 밤잠을 안 주무시고 김만철 동무 가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빨리 수령님 품으로 돌아갑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부장 동무, 그런데 당신은 평양에 몇 번을 갖다 왔음메?” 하고 묻자, 자기는 매월 한 번씩 간다고 답했다.
내가 “그러면 그들의 심보를 그렇게 모르겠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고 올가미를 준비하고 있을 게요.
뻔한 것 가지고 나하고 말해 봤자 나에겐 안 통하오.
거기 갈 사람 같으면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왔겠소. 말이 안 되니까 가시오. 좋게 말할 때 가시오.”라고 말했다.
그러니, 그러지 말고 들어달라고 애원하기에 들을 것도 없다고 잘라버렸다.
“그러면 부탁 하나 합시다.
지금 추운 겨울이니까 이불과 옷만은 받아 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래서 “나는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는 사람이니까 그런 것은 필요 없고 오히려 짐만 될 뿐이다.”고 했더니 “그러면 쌀하고 김치를 해놨으니 제발 그거라도 가져가 주시오”라고 매달리는 것이었다.
“여기 함장 동무가 김치까지 다 만들어 줬으니까 그게 다 필요 없다.
내가 일본 놈들한테 뭐 얻어먹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네 것은 안 먹겠다.” 하고 딱 잘라버리고 선실 밖으로 나와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