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드디어 탈출 그리고 큰처남의 저항

1월 14일 저녁, 그러니까 떠나기 바로 전날 직일관 근무 서러 가야 되는데 매형이 갑자기 찾아왔다.
둘째 누이 남편인데 매형은 교도대 연대장으로 상좌(대령)이다.
교도대는 노동적위대 즉 군대에서 제대된 사람들로 구성된 군대이다. 여기 향토예비군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저녁 무렵이었는데 지프차를 타고 찾아와서는 “자네 누이가 열이 나고 아파서 못 견디니까 지금 우리 집에 가서 좀 봐주면 안 되겠나”라고 부탁했다.
누님은 몸이 약한 편이라 그동안 진찰해서 약도 져 주고 하면서 계속 내가 돌봐주었었다.
“매형! 오늘 직일관 근무해야 되니까 지금 바로 갈 수는 없어요. 내일 아침에 근무교대 하고 퇴근하면서 들릴게요.
대신 약을 져 드릴 테니까 이 약을 먹으면 열이 내릴 거예요” 하며 약을 져 주었다.
내 말을 듣고 약을 받아서 돌아서서 눈밭을 걸어가는 매형의 뒷모습을 보니까 영 측은하였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내가 도망가면 혼날 텐데…’ 셋째 누이와 매형 얼굴도 떠올랐다.
일가친척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10년 동안 벼르고 별러서 도망치려는 바로 그날인데 어떻게 하겠는가.
난 따뜻한 남쪽나라로 꼭 가야만 한다.
직일관 사무실에서 의사옷을 벗고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조금 있으니 우리 식구들이 먼저 부대로 들어왔다.
집사람과 처제, 아들과 딸들은 선창(船倉;배 창고)에 들여보냈다.
창고는 시건장치가 밖에 되어 있으므로 밖에서 문 열어주지 않으면 못 나온다.
그래도 불안하여 “여기 꼼짝 말고 가만히 있어”라고 주의를 주었다.
장모님하고 큰 처남은 자기네들만 등대섬에 식량 가지러 가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서로 만나면 큰일 난다.
만일 여건이 나빠 탈출하기 어려우면 등대섬에서 식량을 얻어서 돌아오면 그뿐이다.
등대섬 여러 곳에 식량을 가지러 간다고 미리 말해놓았었다.
작은처남은 미리 오라고 해서 기관실에 내려 보냈다.
기관실에서 엔진과 기계들이 잘 작동되고 있는지 살펴보라고 했다.
나는 수시로 배로 들락거리면서 동태를 살폈다.
그동안 수없이 마음속으로 이미지를 그리며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였으므로 계획은 차질 없이 착착 진행되었다.
드디어 자정이 되었다.
모든 보초들은 술을 마시고 쿨쿨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고말산 레이다기지 근무자들도 이마를 책상에 대고 졸고 있을 것이다.
어둠을 뚫고 청진호로 조심조심 걸어 들어갔다.
선창과 선실에 들러서 이상 유무를 살피고 기관실에 내려가 작은 처남에게 곧 출발한다는 것을 알리고 선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12시 30분 키를 돌려 엔진을 시동했다.
어두운 밤 바다를 뚫고 엔진소리가 그르렁거렸다.
겨울에는 엔진이 얼까봐 야간에 엔진을 켜 두기도 하기 때문에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욱이 평소에도 야간에 경명환 정장과 함께 배 타고 수시로 들락거려서 청진호가 밤에 시동을 걸고 나가는 것에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청진호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빨리 영해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조급한 생각에 그만 방파제를 들이받았다.
부두를 벗어났을 거라고 생각하고 좌회전을 했는데 앞에서 쾅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뛰어나가 방파제에 내려 충돌된 부분을 살펴보니 다행히 뚫어지지는 않았다.
만일 구멍이 났다면 낭패 아닌가.
하마터면 물고기 밥이 될 뻔했다. 앞이 약간 찌그러졌다.
그 다음에 정신 차려서 부두를 돌자마자 속력을 내서 부지런히 달렸다.
날 새기 전에 200마일 영해를 벗어나야 한다.
시속 30킬로미터로 6시간 정도 달리면 영해를 벗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겨울이라 7시가 되어야 날이 샜다.
그보다 더 늦게 되면 미사일 맞을지도 모른다.
얼마 안 가서 파도가 거세졌다.
거센 파도에 식구들이 괜찮을 것인가 염려스러워 선창에 가보니 뱃멀미에 난리가 났다.
식구들을 끄집어내서 선실로 옮겼다.
선실에 있는 장모님과 큰처남도 마찬가지로 멀미로 누워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날이 새기 시작했다.
계속 달리다 영해를 거의 벗어난 것으로 생각되어 시계를 보니 8시 반쯤 됐다.
전속력으로 8시간을 달렸는데 아직도 영해를 벗어나지 못했다.
배가 무거우니까 시속 25마일 정도 달린 것 같았다.
아침 10시가 되어서야 영해를 많이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여유가 생겼다.
‘아! 이제는 살았구나’
바다를 보니 돌고래가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캄차카 반도를 드나드는 돌고래 떼들이다.
저거 하나만 잡아서 냉동창고에 넣고 먹으면 한 달을 족히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한 마리를 잡으려고 고래포 한 문을 설치했다.
딱 쏘려고 준비를 했는데 그때 마침 큰처남이 갑판으로 올라왔다.
잠자다 일어나서는 날 새기 전에 돌아온다고 했는데 날 새고도 계속 가니까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다.
“매부, 등대섬이 여기 어디 있음메” 물어보는 것이었다.
뭐라고 대답할 게 궁해서 “항로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랬더니 “매부는 항로도 모르고 다님매. 이 망망대해에서 어떻게 하려고” 하면서 내게 시비를 걸었다.
“내가 항해사냐 선장이냐 항로를 어떻게 알아. 모를 수도 있지”
“그럼 다시 돌아갑시다. 담에 옵시다.
12시 교대에 안 나가면 배급표 하루 못 받는 거 잘 알고 있으면서 그럼매” 북한은 하루 결근하면 무조건 가족 것까지 배급표가 안 나온다.
그래서 아무래도 알게 되겠는 거 알려주고 협조해서 돌고래라도 하나 잡아서 빨리 가야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이제는 배급표고 뭐고 없다”
“무슨 소림매”
“이제는 그 지긋지긋한 북조선을 영 떠나서 따뜻한 남쪽나라로 가는 길이니까 싹 잊어버려라.
우리끼리 이제 먹고 살면 된다” 그랬더니 펄쩍 뛰면서 “매부는 이때까지 반동이었음매” 하는 것이었다.
“야, 반동이고 뭐고 먹고 살아야 될 거 아니야”
“매부는 당원이 아님매. 당원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함매. 매부는 악질반동분자, 반혁명분자 아님매”
“야 그게 뭐 다 무슨 필요한 거냐. 당원이면 어쩌고 비당원이면 어쩌냐. 다 먹고사는 건 같은 거지. 정신 좀 차려. 이 일에 협조해라”
큰처남은 북한에 사귀는 처녀가 있었다.
자기 사귀는 사람이 있으니까 북한을 떠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장모님이 잔치를 해주자고 몇 번씩이나 말씀하는 걸 내가 미루고 밀었다.
도망가야 되는데 며느리까지 딸리면 곤란하다.
큰처남은 바쁘게 왔다갔다하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성가시게 시비하는데 갑자기 구름이 와서 확 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