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등대섬으로 식량 가리러 가자

보초들에게 술을 먹이고 잠을 재우는 일을 습관처럼 2년 동안 했으니 이제 남은 건 고말산에 있는 레이다에 안 걸리게 도망치는 것이다.
물론 해안가에 탐조등을 설치하여 놓았지만 탐조등은 여름에는 12시까지, 겨울에는 10시까지만 근무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12시 이후에 도망치면 레이다만 피해간다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
고말산 레이다기지에는 소좌(소령)가 기지장으로 있으면서 그 밑에 대여섯 명이 근무하였다. 레이다기지는 외부인 출입금지를 요하는 중요 군사시설이었지만 나는 특수부대 군의장 신분이므로 진료를 목적으로 그곳을 수시로 방문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레이다를 피할 수 있을 것인가를 연구하기 위하여 난 틈이 나면 레이다기지로 진료 겸 놀러갔다.
밤중에 도망칠 것이니 그들이 밤에는 어떻게 근무하나를 살펴보아야 되기 때문에 기지장 소좌 동무를 비롯해서 그곳 군인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몇 번 가서 친해진 다음 일부러 늦게까지 놀다가 레이다 근무를 어떻게 하나 살펴보니 밤 12시가 넘으면 그들이 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곳은 북쪽 끝이라 별일이 없다보니 12시쯤 되면 슬슬 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옳다. 됐다! 12시에 도망치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이제 만반의 준비가 다 되었다. 언제 도망갈 것인지 정하면 되는 것이다. 사실 나는 가을 용(용띠로 가을에 태어났다)이라 가을에 도망치려고 하였지만 탈출하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을 점검하고 준비하다보니 1986년 가을을 넘기게 되었다. 생명을 걸고 하는 일인데 조심조심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부친께서도 “너는 가을 용이니까 가을에 승천(昇天)할 수 있어. 무슨 일을 도모하든지 가을에 해야 좋다”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나서 가을에 탈출하려고 했는데 또 가을을 넘기게 되었다.
1987년 새해가 밝아왔다. 북한을 탈출하려고 마음먹은 후에는 한시라도 빨리 탈출하려고 했는데 벌써 10년이 지났다.
나는 1월 15일 새벽에 탈출하기로 정했다. 왜냐하면 14일이 새해 들어 내가 처음으로 직일관을 서는 날이므로 그날로 정한 것이었다.
만일 그날 탈출을 못하면 또 보름 후로 잡아야 한다.
그때 또 못하면 보름 후에 해야 되고…북한을 떠나기로 작정한 후부터는 여기 생활 하루하루가 지긋지긋해서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따뜻한 남쪽나라’까지 가려면 먼저 배에 기름을 가득 채워야 되니까 경명환 정장에게 기름을 넣자고 했다.
그랬더니 기름이 좀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정장 동무, 기름이 조금 남아 있어도 기름 들어왔을 때 넣어야 돼. 만일 공장에 기름 떨어져 봐. 낭패야. 무슨 말인지 알겠소” 경명환이는 기름 넣는 것을 좋아한다. 기름이 많아야 맘대로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기름탱크를 개조하여 처음으로 기름을 넣은 것인데 경명환이가 얼마나 싸돌아다녔는지 기름이 얼마만큼 남았나 흘수를 보니까 기름 넣은 지 몇 달 안 되었는데 기름을 거의 다 쓰고 삼분지 일밖에 안 남은 것이었다.
그래서 경명환이와 같이 선봉항(웅기항)에 있는 석유화학공장에 가서 기름을 가득 넣었다.
그때가 1월 6일이다. 기름 탱크를 개조한 후 두 번째로 기름을 넣고 탈출했던 것이다.
나는 만일을 대비하여 작은 처남을 배 기관사로 키웠다.
내가 탈출하다가 불시에 무슨 일을 당하면 운전할 사람이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은 처남을 수산대학에 보내서 기관학과를 졸업시켰다.
작은 처남은 나를 자기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따르면서 내 말을 잘 들었다.
따져보면 내가 처남들을 다 키우다시피 한 것 아닌가.
평남 용강군 후산리에서 장모님과 살고 있던 어린 두 처남을 청진까지 데려와서 집도 마련해 주고, 쌀이 부족하다면 우리 집 쌀을 주어 먹여 키웠으니 처남들에게는 아버지와 다름없을 것이다.
그래서 작은 처남에게는 북한을 탈출할 계획을 약간 귀뜸해 두었고, 수산대학에서 기관사를 따게끔 한 것도 그런 계획의 일환이라는 것을 말해두었다.
반면 큰 처남은 철도대학에 보내서 기차기관사를 하게 했지만 내 말을 잘 듣지 않았고, 골수 공산당 사상이 박혀 있기 때문에 탈출한다고 말했다가는 씨도 먹히지 않을 것이므로 전혀 말을 하지 않았다.
장모님과 처제와 아이들에게도 말을 안 했다. 탈출 계획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나와 처 그리고 작은 처남 셋뿐이었다.
천상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식량을 가지러 간다고 해야 움직일까 웬만한 거짓말해서는 머리가 다 큰 어른들을 다 움직일 수 없다.
항상 굶주리니까 먹을 게 생긴다고 해야 움직이는 것이다.
동해는 섬이 서해보다 많지 않은데 섬에 등대지기들이 있다.
그 등대지기들은 농사를 지어서 혼자 먹는다. 자급자족이다.
당시는 거기까지 배로 식량을 운반해 주고 뭐 하고 그럴 여유가 없을 때였다.
등대지기들이 사는 섬은 몇 가구 사는 데도 있고, 혼자 사는 데도 있다.
거기에서는 농장이 조직되지 않았으니까 배급을 타서 먹는 게 아니라 자신이 농사지어 자기가 먹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까 식량이 조금 남는다.
그래서 내가 진료 받으러 왔을 때 고가(高價) 약을 주고서 등대지기와 식량을 바꿔 놓고는 언젠가 가져가러 간다고 해놓았다고 말했다.
장모님에게 14일날 밤에 처남과 같이 우리 부대로 들어오셔서 식량 가지러 배타고 등대섬에 가자고 했더니 “나같은 늙은이가 뭐하러 같이 가느냐. 짐만 되지” 하면서 자기는 안 가도 되니까 식량만 가져오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등대섬에 가는 것은 장모님 집에 식량 모자라니까 처남들이 배곯고 해서 그것 때문에 가는 것이다.
어머니가 꼭 가셔야 한다. 만날 집에만 틀어박혀 계시니 머리도 식힐 겸 바닷바람을 쐬시는 게 좋다.
또 만일 남는 땅이 있으면 거기에 씨앗을 심어야 한다. 처남하고 꼭 같이 오세요”라고 해놓고는 작은 처남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설득해서 데려오라고 했다.
큰 처남에게도 같이 가자고 하니 “좋기는 좋은데 왜 하필이면 밤에 가냐”고 의아해 하였다.
“낮에는 어선 단속해야 되기 때문에 배를 빌릴 시간이 나지 않는다. 밤이라야 배 시간이 있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요양소에 입원해 있는 처제에게도 우리 병원에서 치료할 게 있으니 보내라고 해서 우리 병원에 오게끔 해놓았다.
정문 보초 서는 놈들한테도 술을 몇 병씩 줬다. “우리식구들 오면 다 들여보내라. 애들까지 다 올 거다. 우리집에 무슨 일이 있으니까 내가 고기를 얻어놨는데 저녁상에 올릴 거니까 가지러오는 거야”라고 했다.
보초서면서는 절대 술을 먹지 말고 교대한 다음에 술 먹으라고 했다. 그렇게 하고 보초서는 바닷가에 초소장마다 불러다가 술을 줬다.
푹 자다가 내일 아침 새벽에 일찍이 나오라고 했다. 뭣도 모르고 좋아서 이것들이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우리 식구들을 오는 순서대로 배에 태울 수 있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