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야간에 도주하러 직일관(당직사관)이 되다

직일관을 설 때는 보초들에게 술을 먹이고 재웠다

 

경명환 정장은 내 말을 잘 들었다. 계급이 소좌(소령)니까 나보다 한 계급 아래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소탈한 나를 인간적으로 좋아했다.

경명환이하고 배를 타고 나가면 “경 동무, 나도 한번 운전해보자”하고 운전을 해 보곤 했다. 경명환이는 “의사 동무가 뭐 하러 배 운전을 해보려고 합니까?”라고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뭐든지 배워 놓으면 좋아. 난 말이야 배우는 걸 좋아해. 뭔가 배워 놓으면 써 먹을 데가 있지 않겠어.”라고 대꾸하곤 했다.

배를 움직일 수 있어야 도망칠 수 있으므로 내 속마음을 감추고 경명환으로부터 좌표 보는 법, 나침반 보는 법, 천문항해(별자리 보고 자신 위치 아는 것), 노랑(위치를 판정하는 기기) 움직이는 법 등 모든 것을 배웠다. 경명환이는 내 본심을 모르고 “군의장 동무, 지난번에 가르쳐 드렸었는데 벌써 잊어버렸습니까” 하며 의기양양하게 가르쳐 주곤 하였다.

더욱이 기름탱크를 개조하여 기름을 가득 채워놓을 수 있게 되니 경명환이는 신이 났다.

북한은 항상 기름이 부족하여 아무리 전투함이라고 하더라도 딱 정량이 있어서 그 이상 운항을 할 수 없게끔 되어 있는데 기름탱크를 개조해 늘렸으니 경명환이는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어선들을 단속할 수 있었다.

어민들이 사용하는 부두에 요리 갔다 조리 갔다 계속 돌아다니면서 단속을 해대니 수산사업소에서 경명완이를 제일 무서워했다. 제일 단속을 심하게 하니까.
하여튼 난 경명환의 배를 운항하는 법에 관심을 항상 두고 바다 이 쪽 저 쪽으로 운항을 해봤다. ‘어디로 해서 도망을 쳐야 되나? 어떤 항로를 가야 하나’ 항상 이 생각이 맴돌았다.

자원해서 직일관을 서다

한편 우리 부대 옆에 특수부대 38호라고 있었다. 그 부대는 30톤급 전투함으로 일본에 간첩을 실어다 주고 또 실어오는 그런 공작업무를 하였다.

그 부대 주력 선박(간첩공작선)은 30톤급인데 속력이 육칠 십 노트가 되어서 엄청 빨랐다.

경명환의 배는 30노트 정도이니 간첩공작선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 배가 달리면 얼마나 빠른지 배는 안 보이고 물보라만 하얗게 보일 정도였다.

생긴 것은 경명환이 배와 비슷하게 생겼다. 그래서 일본에 표류해서 갔을 때 일본 사람들이 간첩공작선인가 해서 사진 찍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때까지 간첩공작선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내가 타고 간 배가 그 배가 아닌가 해서 일어난 소동이었다.

따라서 될 수 있는한 그 간첩공작선이 드나들지 않는 쪽으로 도망쳐야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또 해안가를 살펴보니 요소요소마다 초소가 있어서 보초를 24시간 섰다. 야간에도 서치라이트를 켜고 밤바다를 지키고 있는 것을 알았다.

일가족을 싣고 배로 탈출하려면 보초들을 따돌려야 하는데 보초들이 24시간 눈을 부릅뜨고 바다를 지키고 있는데 어떻게 몰래 빠져나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부대장에게 직일관(당직사령)을 서겠다고 자원을 했다.

직일관은 주간근무가 끝난 후 야간에 부대를 지키는 당직사령이다.

군의장은 직일관을 안 서게 되어있다. 도망치려면 결국 밤에 해야 하는데 야간에 어떻게 도망칠 것인가 궁리를 하려면 직일관이 되어서 현장을 잘 알아야 될 것이었다.

“부대장님, 저도 직일관을 설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우리 부대는 야간에 환자가 거의 없어서 저도 직일관을 설 수 있습니다. 또한 저도 직일관을 서야 되는 계급인데 저만 빠지니 되겠습니까?”라고 요청하였다.

보통 소좌나 중좌들이 직일관을 선다. 함장이나 고참 소좌 등 예하 부대장급에서 직일관을 섰는데 보름에 한 번꼴로 돌아왔다. 내가 직일관 서겠다고 자원하니 한 사람 더 늘어나니까 지휘관들이 좋아했다.

보름에 한 번꼴로 직일관을 서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밤에 보초를 철수하는방법을 강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초들을 철수시키지 않고 어떻게 몰래 도망칠 수 있겠는가. 혼자도 아니고 11식구들이 배를 타고 말이다.

청진은 북쪽 끝에 있기 때문에 겨울에 매우 춥다. 영하 30도 내려가는 것은 보통인데 그러면 바다도 얼어붙는다.

보초들에게 술을 먹이다

그래서 그 이듬해부터는 겨울이 오면 보초장들을 불러서 “오늘 저녁에는 추우니까 발도 얼고 코도 얼면 군의소(軍醫所)로 와서 치료를 해야 된다.

그러면 내가 피곤해. 그러니까 너희들은 저녁에 눈치 봐서 들어가서 자다가 새벽에 지휘관들 출근하기 전에 다 나와라” 이렇게 지시했다.

그랬더니 보초들이 좋아라 했다.

보초장 초소가 8개가 되는데 2시간 씩 교대를 한다. 군인들은 그러지 않아도 밤잠이 부족한데 이게 웬떡이냐 하는 식이었다.

보초들은 내가 직일관으로 근무하는 날을 기다렸다. 게다가 술까지 주어서 먹였으니 내가 직일관 서는 날은 나만 홀로 두 눈 부릅뜨고 바다를 지켰다.

만에 하나 사고가 나면 산통 다 깨지니까.
북한은 술이 없다. 금주령 내린 지 오래고 또 파는 데가 없다.

명절날에나 술을 배급으로 주는데 술 먹고 비틀거리다가 길바닥에 쓰러지면 안전원이 잡아간다.

그래서 술 먹고 전봇대 붙잡고 있는 사람들을 간혹 볼 수 있다. 잡혀가면 얻어터진다.

그런데 난 술을 많이 비축해 놓았다. 우리 부대 약국장(藥局長)이 술을 되게 좋아하는 놈이다.

계급은 소좌(소령)인데 예하 부대에 약을 주면서 술을 받아먹었다.

그러다 나한테 그걸 들켰던 것이다. 약장(藥欌)을 열어보니 술이 가득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예하부대에서 약 타러 오면 술을 받아놓았던 것이다.

예하부대에서는 고가(高價)의 약을 많이 받아가려면 뇌물을 줘야 하는데 약국장이 술을 좋아하니 뇌물로 술이 많이 들어왔던 것이다.

술이 귀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꼭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서 약국장한테 “혼자 다 먹지 말고 절반은 내 약장에 갖다 놓아”라고 혼을 냈다.

난 내 자식들한테도 엄하게 대했지만 내 밑에 부하 장교들도 아주 엄하게 다스렸다.

규정 조금이라도 어기면 가만 안 놔두었다. 그렇게 해서 술을 많이 모았다.
보초장마다 술을 한 두어 병씩 주면 초병(哨兵) 한 사람에 두어 잔씩 돌아간다.

한 개 초소(哨所)에 아홉 내지 열 명이 있다. 거기 술 한 병이면 여기 몇 병이 된다.

맥주병만하다. “너희 초소에는 별일이 없을 테니까 한잠 자고 내일 아침 일찍이 나와” 하면 좋아한다.

대신 난 밤잠을 못 자고 살펴보았다.

여태까지 거기에 간첩 들어온 일도 없고 사고 난 일도 없기 때문에 과감하게 그렇게 했던 것이다.

다만 누가 알면 안 되니까 입단속은 철저히 했다.

자기네들도 이해관계가 있으니까 절대로 어디 가서 발설을 안 했던 것이다.

이걸 내가 도망쳐 나올 때까지 약 2년 동안 했으니 보초들에게 습관이 돼버렸던 것이다.

 

 

김만철 선생 탈북기 제10화 PDF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