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안기부 조사관들은 나를 위장간첩이라고 의심했다

울화통이 치밀었지만 관계자들이 아닌 사람한테 따질 수도 없어서 잊어버리기로 했다.
나는 어쩔 수 없다 싶으면 쉽게 체념하는 성격이라 금방 잊어버리고 마음을 편하게 가졌다.
한두 시간이 지났는데 저 멀리 창문 밖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자동차들이 불을 앞에 달고 개미새끼처럼 오가는 것이 보였다.
엄청나게 많은 자동차 불빛을 보니 순간 ‘미국으로 절대로 안 간다고 했는데 이것들이 우리를 속이고 미국으로 데려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미국 뉴욕 쯤 되는가보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에서는 서울은 고전(옛날) 도시라 발전을 못해서 고층건물도 없고, 짤막짤막한 집이 가득 있고, 길도 좁아서 밤낮 교통사고가 참 많이 일어난다고 말들 하였다.
그래서 지금 나는 뉴욕이나 아니면 뉴욕과 같은 큰 도시인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서울이 그렇게 너른지 꿈에도 몰랐다.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바로 착륙을 하지 않고 공중에서 몇 바퀴 도는 것 같았다.
무슨 이유인지 잘 모르겠지만 ‘일부러 그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튼 놀래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비행기가 공항으로 착륙을 하였다.
아마 공중에서 두어 시간 있었던 것으로 느꼈고, 대만에서 출발한 후 총 서너 시간 걸려서 착륙한 것 같았다.
공항에 내리니까 사람들이 꽃다발도 목에 걸어주고 그러는데 정신이 없어서 별 느낌이 없었다.
내 눈에는 머리가 노랗고 파란 외국 기자들이 가득 몰려있는 것만 보였다.
조선 기자들은 드문드문 보이니 진짜로 외국에 온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잘못 왔구나. 큰일 났다’ 북에서는 일본놈들을 철천지원수라고 하고, 미국놈들은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한다.
철천지원수(徹天之怨&)라는 말은 하늘에 사무칠 정도의 원수라는 뜻이고,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는 한 하늘 아래서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라는 뜻이다.
북조선에서는 미국을 더 원수로 생각한다.
그러니 북조선에서 교육 받은 내용대로 미국이나 일본은 죽어도 못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우리한테로 몰려오는데 이리저리 밀리고 밀려 가다보니까 귀빈실까지 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내가 보았던 안기부요원이라든지 얼굴을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맨 처음 보는 사람들만 있었다.
우리식구들을 계단식 의자에 앉으라고 하더니 거기 있던 사람들이 앞, 뒤, 그리고 옆에 가득 포위해서 앉았다.
우리가 한 복판에 앉은 셈이다. 그게 기자회견이었던 모양이다.
기자들이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난 무슨 말을 하였는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아무튼 할 말은 거의 다 했다.
어느 기자가 우리 막내아들(광호)에게 “너는 몇 살이야” 하면서 여러 가지를 물으니까, 우리 막내는 당시 초등학교 1년이었는데, 북에서 선생들한테 배운 그대로 말하는 것이었다.
“남조선에는 거지만 득실거리고, 애들이 깡통 차고 다니면서 미국놈들이 버린 쓰레기통을 뒤지고, 학교도 못 다닌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기자들이 ‘와’ 하고 웃었다.
처남들한테도 여러 가지 물어보았고, 처남들도 아는 대로 말을 다 했다.
기자회견을 할 때까지도 여기가 한국이라는 것을 몰랐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떠났는데 기자들이 우리 식구들이 탄 버스를 쫓아오면서 몸을 차 밖으로 다 내놓고 사진 찍느라고 야단들이었다.
난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왜 그렇게 사생결단을 하면서 사진을 찍고, 비디오카메라로 생중계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만약을 대비해서인지 기동경찰들이 우리 식구들이 탄 버스를 호위하였다.
얼마쯤 가서 숙소로 들어갔는데 울타리가 엄청나게 높게 쳐져 있었다.
호텔은 분명 아니었고, 나중에 알아보니 대방동에 있는 소위 안가(安家)라고 하는 곳이었다.
우리를 따라온 기자들은 뭣 때문인지 안가 바깥에서 날을 새웠다.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북조선에서는 그런 일을 못 봤으니까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그날 밤부터 한 방에 한 사람씩 자라고 하면서 식구들마다 각 방을 쓰게 했다.
식사할 때 말고는 잘 때는 전부 따로 잤다.
집사람은 나하고 한 방에 있고, 광호는 어린애니까 여형사들이 같이 있었고, 우리 어머니한테도 여형사들이 같이 있었고, 나머지는 어른들이 혼자 자게 하였다.
그리고는 이튿날부터 아침 식사를 마친 다음부터 조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등 육하원칙에 따라서 꼬치꼬치 캐물었다. 나는 아는 대로, 그리고 행한 대로 모두 사실대로 말했다.
하지만 안기부 조사관들은 내 말을 의심하고 있었다.
내가 한 밤중에 탈출한 날은 구름 한 점 없는 좋은 날씨였는데 갑자기 구름인지 안개가 끼어서 앞이 안 보였고, 그걸 뚫고 한참을 나오니 구름인지 안개인지를 벗어날 수 있었는데 그게 거짓말이라는 것이었다.
조사관들은 그날의 기상도를 가져와서 “당신이 타고 나온 지점이 여기 아니냐?” 묻기에 “좌표는 맞다”고 했더니 나에게 기상도를 보여주면서 “봐라. 기상도에 해상에 안개나 구름이 낀 적이 없다고 나와 있지 않느냐.
왜 거짓말을 하느냐”라고 묻고 또 물었다.
지금은 30년 가까이 세월이 가서 다 잊어버렸지만, 그때는 좌표도 훤하고 일기랑 하늘을 쳐다보고서도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불겠다는 것까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니 내가 왜 거짓말을 하느냐. 구름인지 안개인지 꼈었다.
안개가 있어서 30미터 앞을 볼 수도 없었고, 내 오죽 하면 식량이 부족한 거를 알면서 돌고래 하나만 잡으면 냉동창고도 큼직한 게 있는데 거기다 얼어붙여 놓고 그걸 먹으면 한 달이라도 살 수 있는데 왜 그걸 안 잡았겠느냐.
물론 처남이 나와서 시비거는 것도 있었지만 안개가 끼니까 북조선에서 쫓아올까봐 돌고래 잡는 데에 시간 낭비하지 않고 도망친 것이다”
아무래도 안개가 끼면 시계가 흐려서 빨리 달릴 수 없다.
그래서 그런 건데 조사관들이 계속 뭐 이랬냐 저랬냐 의심하면서 못 살게 굴었다.
조사관들에 의하면 북조선에서 당일 내가 탈출한 것을 알고 공군부대에서 전투기를 여러 대 띄웠다는 것이었다.
전투기가 날아 와서는 맑은 날씨라 당신 배를 발견하고 총을 쏘든지 미사일을 쏴서 배를 격침시켜 다 죽였어야 했는데 왜 당신만 딱 살려줬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당일 비행기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고 하니까 거짓말이라고 못 믿겠다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이수근이가 월남할 때 북한군들이 일부러 총을 땅에다 대고 쐈다는 둥 하늘에 대고 쐈다는 둥 발등에서 먼지가 풀쑥풀쑥 나는데도 맞지 않았다는 둥 이러면서 “똑바로 얘기를 하시오” “비행기가 왜 보고도 당신을 살려줬소”라고 묻는 것이었다.
비행기를 못 봤다는 데도 이거 끝이 없이 계속 물어보고, 안개가 껴서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 갔다고 해도 전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