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뭔가 미심쩍기는 했지만 서울행 비행기에 올라탔는데

탑승 후 펼쳐든 신문에 우리 식구의 기사가 실린 것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웅평이와 김신조의 말 중에 내가 가장 관심 있는 부분은 남조선에서의 생활에 관련된 부분들이었다.

우리 가족이 살아가자면 먹고 사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이웅평이는 먹고사는 건 얼마든지 풍부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먹을 거하고 자유만 있으면 사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을 거라고 평소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처남 둘은 이웅평이와 김신조의 말에 완전히 설득되어서 어서 빨리 한국으로 갔으면 했다.

큰처남은 일본에서는 만일 한국으로 귀순하게 되면 가다가 물에 빠져 자살하겠다고 그러던 놈이었는데 대만으로 날아가서는 조총련 소리는 아예 쏙 들어갔고, 왜 조총련 간다고 거짓말 하고 이리로 왔느냐고 추궁도 하지 않았다.

김신조와 이웅평의 이야기가 처남 둘이 북조선에서 배운 거와 완전히 다른데 형님들 이야기가 맞는 거 같으니까 귀가 솔깃해서 밤늦게 1시가 넘도록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가 10분간만 하겠다는 것이 2시간이 지나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그날은 헤어졌다.

그렇게 한 후로 하루가 지나갔는데 남한 쪽에서 새벽부터 대여섯 명이 찾아 왔다.

안기부 쪽 사람 몇 명과 이웅평 그리고 나고야 총영사 이렇게 왔다.

한국에서 왔다고 여러 가지 선물을 주었다. 담요를 비롯해서 먹을 것과 고기 말린 것을 많이 가져왔다.

거기는 열대지방이니까 아마 말려서 먹어야 되나보다. 우리는 주는 대로 받았다.

나는 중앙정보부 사람들이 왔으니까 틀림없이 남조선으로 가자고 재촉을 할 거라고 짐작했다.

처남들은 “남조선으로 가겠냐?” 물으면 “괜찮겠죠. 뭐” 그런 식으로 대답하면서 반대를 하지 않았다.

그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남조선으로 가자고 권유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거긴 죽어도 못 가는 곳이야. 그런 줄 알아. 나는 죽어도 못 가” 했다.

그랬더니 이웅평이 “아, 형님! 그러지 마시고 나는 남조선에 와가지고 지금 군인으로 있는데, 북조선에서 넘어올 때보다 직급이 더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차도 있어가지고 내 맘대로 차를 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사는 것 보고나서 그때 다른 데로 가도 되지 않습니까.” 말했다.

“그거야 중앙정보부에서 시키는 일인지 내가 알 수가 없지 않느냐? 그러니까 그만하고 옛날이야기나 하자.”라고 나는 말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이웅평이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옛날이야기를 해서 그가 진짜 이웅평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나로서는 이웅평이 얼굴을 모르니까 여기서 처음 보는 얼굴이다 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한두 번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처남 둘은 이미 설득이 되었지만 나는 남조선으로 간다는 것이 영 마음이 안 내켰다.

중앙정보부요원들이 시키면 이웅평이나 김신조나 우리가 듣기 좋은 고소한 소리를 많이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하고 의심하고 있었다.

북한 보위부 놈이나 남한 정보부 요원들이나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북한 보위부 놈들은 걸핏하면 잡아다 족치면서 허위로 꾸미는 등 아주 악질적으로 논다.

보위부나 안기부나 똑같은 곳인데 아마 악질적인 거는 똑같지 않겠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조선 사람들이 아침부터 와서 계속 남한으로 가자고 설득한 것이 먹혀들어 처남 둘과 식구들이 설득당하니 나도 남조선으로 가긴 가야겠는데 그냥 가기는 미심쩍어서 약속이라도 받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신 부친이 생전에 말씀하시기를 남한에 시집간 나의 큰누님이 있는데 통일 되면 꼭 가서 만나보라고 하신 것이 생각나서 안기부 사람들한테 “우리 누님이 남한에 한 분 계시는데 나이는 좀 많을 거다.

이름은 김재선이다. 그러나 죽을 나이는 아니다. 그러니까 내 누님을 찾아서 만나보고 결정하겠다.

남조선으로 가는 게 그렇게 급하지 않지 않느냐. 그러니 난 누님 말 들어보고 결정하겠다.

누님이야 진실로 이야기 하겠지 거짓말을 하겠느냐” 그렇게 못 박아버렸다.

그때가 아침 7시 반이나 8시쯤이었다.
그러니까 잠깐만 기다려 보라더니 오후에 찾았다고 연락이 왔다.

김재선이라는 이름이 100여 명 되는데 우리 누님은 부친이 시집보낸 전라도 함평에 그대로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함평이라는 데를 집중적으로 찾아 보니 거기에 누님이 있었던 것이다.

“빨리 데려오시오. 여기서 만나보겠소. 남조선에 발 들여놓았다가 발 묶이면 어디로 도망도 못 가고 그럴 터이니 누님을 만나기 전에는 절대로 남조선으로는 못 가오”라고 하니까 “절대 그런 일 없다.

누님을 못 만나면 다시 돌아오고, 또 나쁘면 돌아와도 되지 않느냐. 세계가 다 아는데 거짓말을 어떻게 하겠냐.”면서 설득을 하기에 “안기부에서 무슨 짓을 못 하겠냐.

밤에 왜 도대체 가야되느냐. 해가 거의 거의 넘어가는데.”라며 완강히 거절하였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빨리는 못 데려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면 약속해라. 내가 남조선으로 가면 왔다고 신문에 절대 내지 마라.

그리고 살기 나쁘면 다른 나라로 가도 좋다. 그것을 약속하면 가겠다”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전두환 대통령이 직접 명령해서 왔다는 사람이 자기는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한다면서 책임지고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하였다.

전두환 대통령은 남조선으로 오기만 하면 서울에 일등급 병원을 차려주고, 해달라는 거 다 해준다고 약속했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졌다.

그래서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를 탈 때 꽃다발을 걸어주고 하는데 그게 하나도 눈에 보이지도 않고 정신이 갑자기 아찔해지는 것이었다.

‘남한에서 왔다는 대통령 특별기인데 잘못 탔다가는 이 많은 식구들이 무슨 봉변당할지 모르지 않는가.

내 혼자면 목숨 바쳐도 별거 아닌데.’라는 생각에 정신이 어질어질해졌다.

내가 맨 먼저 비행기 트랩을 밟고 올라타니 줄줄이 나를 따라서 식구들이 비행기에 올라탔다.

비행기에 올라타서 좌석에 앉자마자 조선일보가 딱 있기에 신문을 들어보니 첫 페이지에 “대한민국은 김만철 가족을 부르고 있다”라며 사진이 쭉 나와 있는 것 아닌가.

순간 ‘이 새끼들, 영 거짓말이구나. 속았다’라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안기부 요원들은 하나도 없고, 나를 설득하러 왔던 사람들도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스튜어디스와 남자들 몇 명 있었는데 전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보고 뭐라고 하겠나. 울화통을 식히면서 아무 소리 안 하고 한쪽 구석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김만철 선생 탈북기 제21화 PDF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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