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죽은 걸로 알고 있는 이웅평이가 우리 식구들을 설득하는데

헬기를 타고 한 삼십 분 간 후에 어느 비행장에 내리더니 어떤 방으로 우리 식구들을 데리고 갔다.
거기서 군인들은 우리 식구들에게 이상한 옷을 입히고 모자도 이상한 것을 씌웠다.
아마 어디로 가는지 행선지를 못 보게 하려고 그러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깥을 보니 꼭두새벽인데 어떻게 알았는지 기자들이 잔뜩 몰려와 있었다.
민간 비행장이 아니라 군비행장인데도 기자들이 몰려와서 취재하려고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이쪽 문으로 나가시오”라고 그러니까 우리 식구들은 우르르 군인들의 안내에 따라 나가게 되었고, 큰처남도 조총련으로 가자고 말할 기회도 없이 엉겁결에 따라 나왔고, 나가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비행기(일본 자위대의 YS-11기)에 올라타게 되었다.
타자마자 뭐라고 일본말로 안내 방송이 나오더니 일 분도 안 돼서 휙 활주로를 날아 이륙해버리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하늘을 날아오른 비행기에서 밖을 바라보니 우리를 취재하려고 몰려든 기자들이 까만 점처럼 보였다.
큰처남은 얼떨떨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비행기가 흔들흔들 하니 멀미가 났는지 한잠 자고 일어나더니 오키나와에 잠시 급유 하러 내렸을 때 “여기가 조총련임매”하고 물었다.
“아니야 좀 더 가야돼. 아마 다른 데로 둘러서 가는 모양이다” 했더니 이놈도 좀 이상한 듯 머리를 갸우뚱 하더니 “그렇게 먼 뎁매”하며 좀 이상하다는 감을 자꾸 표시하였다.
오키나와에서 잠시 머무른 후 이륙한 비행기가 한참 날아서 대만에 거의 도착할 때쯤 해서 큰처남이 아무래도 이상한지 또 묻는 것이었다.
“아니 조총련이 맞슴매”
“야 모르겠다. 나도 처음 타서 알겠냐?”
“거 이상함매. 나쁜 놈들이 아닙매. 우리 식구를 영 어디로 끌구 가서 죽일랴구 그러는 게 아님매. 이거 좀 이상함매”
북조선에서 사람 죽이는 걸 늘 봤으니까 여기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큰처남은 이걸 물어보고 저걸 따지고 막 그러기에 “좀 가만히 앉아 있어. 죽을 때 죽더라도 살 준비를 해보아야 할 게 아니야” 그랬더니 좀 못마땅해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있었다.
대만으로 간다고 헬기를 새벽 두세 시쯤 탔는데 중간에 비행기로 갈아타고 오키나와에 들렀다가 저녁때가 되어서야 대만에 도착했다.
두어 시간이면 올 수 있는 거리를 빙빙 둘러 온 것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북한에서 공중 납치 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아야 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타이베이 중정국제공항에서 내린 후 타이베이 교외의 특수기관 전용 초대소로 갔는데 시설이 일본의 숙소만 못했다.
일본에서 이곳으로 올 때 석 달 동안 있으면서 어디로 갈 것인지 차분히 생각해보라고 했기 때문에 여기서 석 달 있자니 참 따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있으니까 남조선 사람들이 우 하고 몰려왔다.
안기부 사람들, 김신조, 이웅평, 김창석 나고야 총영사 등 외교관들이 몇몇이었다.
안기부 놈들은 별로 간섭 안하고. 가버렸고, 이웅평과 김신조 둘 만 남았다.
난 일본에 들어간 후 이곳 대만에 올 때까지 노심초사 하였는데 어쨌든 우여곡절을 겪고 이곳에 오니 긴장이 풀렸는지 피로가 몰려와 침대에 누웠더니 잠이 들어버렸다.
한잠 푹 자고 일어나 보니 큰 원탁 테이블에 빙 둘러서 우리 처남 둘과 큰 애(광규)하고 다섯이 앉아서 김신조와
이웅평이 하는 소리를 재미있게 듣고 있었다.
나는 화장실에 들렀다가 와서는 처남들이 귀 뻘줌해서 이웅평이 이야기를 듣고 있기에 “야 너, 저 사람 이웅평이 같지 않다.
그러니까 잘 생각해봐”라고 거짓말에 속지 말라고 귓속말로 말했다.
그러면서 “동무, 진짜 이웅평이 맞아?”라고 이웅평이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아! 형님, 무슨 소리 함매” 하면서 억울하다는 듯이 눈을 둥그렇게 크게 뜨면서 말했다.
일본에 있을 때는 이웅평이를 상대를 안 했다.
이웅평이는 죽은 놈인데 거짓말로 회유하는 줄로 알고 그랬다.
“아, 맞지 않구요”라고 이웅평이 대답했다. “그럼 당신네 아버지 사는 데 좀 대보셔”라고 물었더니 “웅기 아니오”라고 했다.
이웅평이 웅기에 산다는 거 내가 알고 있었다.
북조선에 있을 때 이웅평이가 목이 잘려서 죽었다는 소식을 믿을 만한 사람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내 눈앞에 있는 이가 이웅평이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청진에 공군대학이 하나 있는데 우리 병원에서 멀리 안 떨어져 있다. 조용한 날에는 비행기 소리 간간이 들릴 정도로 가깝다.
나에게 이웅평이가 죽었다고 가르쳐준 사람이 공군대학 강좌장(학장)이다.
그가 말하기를 이웅평이가 비밀문건을 가지고 남조선으로 비행기 타고 도망쳤는데, 그걸 알고 있던 지하공작원들이 이웅평이를 죽이려고 수원 비행장에 대기하다가 칼침을 놓아 죽인 후 목을 잘라서 배낭에 담아서 중앙당에 갖다 바쳤다고 말해 주었다.
이웅평이를 가르쳤던 강좌장이 얘기하니까 내가 곧이 안들을 수 없었다.
강좌장이면 대령인데 그 사람이 폐렴이 와서 우리 과에 입원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은 장기를 아주 좋아한다. 나도 장기 좀 둘 줄 안다.
저녁에 당번 서는 날 간부병실에 가면 심심하니까 나가지 못하게 이 말 저 말 해주면서 꼬신다.
내가 치료도 잘 해줬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가 이웅평이가 목이 잘려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이웅평이는 마지막에는 자동차 키를 내놓으면서 나는 자동차가 두 대가 있다.
남조선이 그렇게 잘 살기 때문에 차가 두 대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말 들으면 큰 이익을 볼 거라고 했다.
“알았어. 알았어. 하지만 당신 아직 믿을 수가 없어”라고 말했다.
이웅평이는 비행기 타고 늘 남조선 방송을 들어서 북조선에서 남조선에 대해서 하는 말 거짓말로 알고 있었고, 여러 번 휴전선까지 왔다가 남조선을 살펴봐도 암만 해도 다른 것 같아서 비행기를 타고 높이 올라간 후 하강하여 수원비행장에 내렸는데 어떻게 알고 내 목을 잘라 갔겠느냐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