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안기부 조사에 맘이 상하여 남조선을 떠나기로 결심했는데

안기부 조사관들은 나를 죄인 취급하며 조사하였다

 

안기부 조사관들은 참으로 지독했다.

어제 물어본 것을 다음날 또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지겨울 정도로 물어봤다.

우리 막내(광호)한테 가서도 물어보고, 어머니한테 가서도 물어본 후 그것과 내 말과 다른 게 있으면 나를 불러다가 캐물었다.

조사관들은 광호한테 이렇게 물어봤다.

“광호는 몇 살이지?”
“예, 9살입니다”
“언제 배를 타고 떠났지?”

“어머니와 가족들을 따라서 배에 탔고 배를 탄 후 졸려서 잠을 잤는데 언제 배가 떠난 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언제 일어났지?”
“제가 일어났을 때는 날이 샜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기억나는 거 말해봐. 아침에 해가 뜬 다음에 어떻게 됐냐?”
“계속 갔지요.”

“해를 보면서 갔지?”

“아니요. 그날 날이 흐려서 구름이 씌어서 해를 못 보고 어두워질 때까지 갔어요”

“그걸 어떻게 알지? 선실에만 있었지 않았나?”
“그때까지는 파도가 심하지 않아서 선실 밖으로 나왔다 들어갔다 했어요”라고 대답했다.

조사관들은 광호가 어리니까 사실대로 말하지 거짓말을 못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자기들이 조사한 자료와 다르게 당시 해역에 구름이 꼈다고 말하니까 내 말이 사실일 수도 있겠다고 참고는 했겠지만 그래도 믿어지지 않으니 어머니한테 가서 또 물어보았다.
“어머니, 그날 날이 아주 맑았지요?”
“예”
“해가 쨍쨍 났지요?”
“예”

어머니는 안기부 조사관들이 물어보는 대로 무조건 “예”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답변을 받아놓고서는 내게 와서 시비하였다.

어머니는 날씨가 맑아서 구름은커녕 안개조차 끼지 않았다고 했는데 왜 거짓말하느냐고 캐물었다.

난 한 얘기를 또 하고 또 했다.

“어머니는 배가 흔들리니까 선실 바깥으로 한 번도 나가지 않으셨다.

그래서 날씨가 맑았는지 흐렸는지, 구름이 꼈는지 아닌지 모르실 것이다.

당신들이 그렇게 유도해서 물어보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게 답변한 것이다”
“광호는 나갔다 들어왔다 했는데 어머니는 한 번도 안 나가셨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라고 조사관이 물었다.

“어머니께 물어보라.

어머니는 배 타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멀미가 많이 나셨다.

토하고 그래서 정신이 얼떨떨하셔서 계속 누워계셨던 것이다.”

“선실에는 창문이 있지 않느냐. 창밖으로 구름이 끼었는지 안개가 끼었는지 보고 말한 거 아니냐?”

“당신들 정말 그렇게 못 믿겠는가? 이렇게 못 믿고 날 괴롭히면 나도 생각이 있다” 나는 부아가 치밀어 오르면서 ‘안 되겠다.

이렇게 못되게 굴면 남조선을 떠나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에게 자기 입맛대로 무조건 “예” 하고 대답하게끔 물어본 것을 가지고 내게 시비를 하니 여기 있는 게 지겨워졌다.

그렇게 조사를 받기 시작한 지 이틀이 되니까 조사관들이 너무 악질적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똑똑히 얘기하시오.”라며 위압적으로 말을 하는가 하면 한손으로 재떨이를 집었다 놨다 하면서 조사하는 태도가 영 속상했다.

완전히 죄인 취급하는 것이었다.

전날 다 얘기했는데 또 따지고 따지고, 한 얘기 또 캐묻고 해서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조사 후 방에서 그 내용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쾌해졌다.

“일생에 내가 그런 일을 당한 적이 없는데 나를 죄인 취급을 하다니. 북조선에 있을 때 보위부에 불려갔을 적에도 그렇게 하대를 받은 일은 없었는데…

” 북한에서보다 더 악질적으로 하대를 받게 되니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약 30년이 지난 지금 내가 말로 하니까 그렇지, 밤에는 열두시까지 지하실에 끌고가서 또 물어보지.

조사실에는 고문하는 그런 기구도 보이고, 똑바로 얘기하라는 등 젊은 놈이 재떨이 들었다 놨다 하면서 겁을 주는가 하면 눈을 부라리며 못살게 굴었다.

“좋다. 내가 간첩이라고 하자.

그래도 아직까지 죄지은 것 없지 않느냐.

당신네들하고 같이 내 있었지 밖에 나가서 공장 파괴한 일도 없고, 사람 죽인 일도 없지 않느냐.

아무 죄도 없는데 당신이 나를 간첩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제라도 우리 식구들 다 데리고 다른 나라로 가서 간첩 안하면 될 거 아니냐.

나를 이렇게 못 살게 굴 필요가 있겠느냐.

난 당신네 대통령하고 약속한 거 있다.

나를 신문에 내지 말라고 했고, 이 나라에 살기 나쁘면 다른 나라에 가도 좋다는 약속을 받고 왔는데 나를 이런 식으로 대접하면 못 사니까 난 당신네하고 더 얘기할 이유가 없다.

내가 이만큼 얘기해준 것도 내가 다른 나라로 갈 사람 같았으면 이렇게 말했겠느냐.

난 할 말 이제 다 했다. 더는 물어보지 마라. 지겹다.”

그렇게 말을 끝내 버리고는 아무리 말을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눈 딱 감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데도 돌려보내지 않고 밤 12시까지 계속 붙들고 있기에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난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했다.

그럼에도 계속 못 믿고 이런 식으로 괴롭히므로 제일 높은 책임자하고 담판을 짓겠다.

더 물어볼 게 있으면 당신네 제일 높은 책임자를 보내라” 그렇게 말한 후 숙소로 돌아왔다.

‘내가 이 나라에 살겠다고 북조선을 탈출하여 온 게 아니지 않나.

따뜻한 남쪽나라에 가려고 목숨을 걸고 탈출해 와서, 배가 고장 나는 바람에 일본에 가게 되었고, 남조선에 가고 싶은 맘이 손톱만치도 없었는데 대통령의 명령이라며 꼭 남조선에 오셔야 된다고 사정사정하며 꼬시더니 이게 도대체 무슨 푸대접이란 말이냐.

대학병원 같은 큰 병원을 지어 준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면서 살살 꼬시더니 내 참.

이런 곳에서 살 필요가 없지 않느냐. 다른 나라로 가버려야 되겠다.’ 하고 결심을 하니 맘이 좀 풀어졌다.

 

김만철 선생 탈북기 제23화 PDF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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