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난생 처음 가 본 쌀가게에 곡식들이 널려있는 것을 보자 신기했다

쌀을 다 사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흐뭇해졌다

그 이튿날 아침에 “아침식사 같이 합시다” 하며 단장이 찾아왔다.

안기부 소속 단장인데 아마 전날 조사받을 때 조사관들한테 역정을 내며 높은 사람을 보내야 말을 하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겠다는 내 말을 보고받고 온 모양이었다.

단장은 식탁에 앉자마자 “제 부하들이 김 선생을 좀 못살게 굴었나본데 너무 노엽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해상도와 김 선생의 말이 안 맞으니까 꼬치꼬치 캐물은 것이지 선생을 간첩으로 의심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그런 일이 없을 테니까 마음 놓으십시오”라는 사과의 말부터 말하였다.

그러나 마음이 너무 상해 있었던 나는 “내가 이 나라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고, 간첩질 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대접할 수 있습니까?

이제부터 잘 생각해서 다른 나라로 가야 되겠는데 아직 어느 나라로 갈 건지 못 정했습니다.

높은 간부들 만나서 내 약속한 거 얘기하고 떠날 겁니다.”라고 어젯밤 결심한 내용을 말했다.

그랬더니 단장이 내 손을 딱 잡으면서 “이제부터 괴롭히는 일이 전혀 없을 겁니다.

마음 푹 놓고 이제부터 나들이나 합시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절대 없을 겁니다”라며 점잖게 말하였다.

단장은 이런저런 말을 하였는데 내용을 들어보니 호감이 갔다.

상당히 점잖고 인품이 있는 사람이었다.

단장은 나하고 용띠 동갑이었다.

북에서는 용띠 개띠 등 무슨 띠를 쓰지 않는다.

그런 말이 전혀 없다.

나는 부친으로부터 들어서 용띠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친은 남조선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띠에 대한 상식이 풍부하셨고, 한문을 많이 배우셔서 아마 역학 지식도 풍부하셨던 것 같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부친께서 “너는 가을 용이니까 무슨 큰일을 하려면 가을에 해야 된다.

그래야 하늘로 승천한다.

봄에 하면 땅으로 잦아들어서 안 된다”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어서 겨울 1월 제일 추울 때에 도망쳤던 것이다.

봄은 아니니까 하늘로는 못 올라가도 옆으로는 갈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해서 그때 탈출한 것이다.

하여튼 식사 후 단장은 “버스 한 대를 오라고 했으니 그것 타고 여기 저기 다녀봅시다”라고 말했다.

버스가 오자 우리 식구들보고 버스에 타라고 하더니 단장은 맨 앞좌석에 앉았다.

“김 선생, 어디를 맨 먼저 가보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배급소가 어디 있소? 거기부터 가봅시다”라고 대답했다.

“아, 쌀가게요?” 하면서 단장이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는 “제일 먼저 그리로 안내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라고 말하더니 무전기로 지시를 하였다.

아시다시피 북한은 쌀 배급소에 가서 쌀 배급을 타서 먹고 살았다.

나는 먹고 살기 위해서 탈북 했으니까 쌀 배급소가 가장 궁금하였다.

남조선 사람들은 어떻게 쌀을 배급을 받는가, 알고 싶었다.

쌀 배급소를 찾아가는데 금방 가는 게 아니라 시간이 좀 걸렸다.

그래서 “왜 그렇게 오래 걸립니까? 배급소가 그렇게 멉니까?”라고 물었다.

단장은 “이제 곧 나옵니다”라고 말해놓고는 무전기를 들고는 “왜 그렇게 흔하디흔한 쌀가게도 빨리 못 찾아”라고 부하들에게 무섭게 호통을 쳤다.

우리 식구들이 탄 버스 앞에 차가 하나 있고, 뒤에 서너 대가 호위를 하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버스 앞으로 호위용 차가 휙 나타나니까 버스를 세우더니 내리라는 것이었다.

단장을 앞세우고 우리 식구들이 내리는데 나한테 뻣뻣하게 까불던 놈들이 단장 앞에서 설설 기는 모습을 보니까 웃음이 나왔다.

단장이 “김 선생, 여기 좀 둘러보세요”라고 하는데 영 북조선의 배급소와 달랐다.

양쪽 길에 사람 다니는 길만 요만큼 해놓고 쌀하고 여러 종류의 곡식들이 다 있었다.

그래서 “여기가 뭐하는 뎁니까?”라고 물었더니 “쌀 배급소 아닙니까?”라고 단장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일행을 따라온 안기부 사람이 “남조선에서는 쌀을 배급소에서 배급표를 내고 받아오는 게 아니고 자기 돈으로 사는 겁니다.

그래서 싸게 살 수도 있고, 잘못하면 비싸게 살 수도 있습니다.

자기 수완껏 사면 싸게 삽니다”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나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게 무슨 말인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쌀 배급소에는 쌀뿐만 아니라 보리, 콩, 밀 등 여러 가지 곡식을 쭉 진열해 놓았다.

‘참 이상한 배급소들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조선에서는 쌀을 펼쳐놓는 게 아니라, 구멍 요만한 게 하나 있어가지고 거기다 자루를 대면 저울에 재서 거기다 쏟아 넣어준다.

이런 것만 보았으니 ‘참 이상한 데다.’라는 생각이 안 들 수 없었다.

장모님하고 집사람, 큰처남이랑 애들은 신기해서 눈이 휘둥그레져서 안기부 사람들이 설명하는 거 따라다니면서 듣느라고 거기 정신이 다 팔려 있었다.

가만히 보니 주인 혼자 파는 쌀가게가 내 눈에 띄었다.

거기 가서 보니까 쌀을 포대로 많이 재놓은 것이 신기했다

그래서 “이거 다 사 가도 되는 겁니까?” 물었다.

주인이 “다 사시게요? 그러면 싸게 드릴게요”라고 대답했다.

‘아하, 남조선은 배급소 사람이 제 맘대로 하는 거로구나’라고 이해가 되었다.

북조선하고는 영 다른 모습, 즉 돈만 받으면 다 되는 거로구나 하고 이해했지만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뇌리에 콱 박혔다.

이런 상점과 광경을 상상해본 적조차 없었다.

영화에서도 한 번도 본 일이 없고 내가 가장 많이 가 본 동독에서도 못 봤다.

공산국가라고 다 배급으로 주지는 않았다.

소련, 동독, 중국과 같은 공산국가에서는 쌀을 마음대로 파는 장마당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가보지를 않았다.

쌀 사먹는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남한처럼 버젓이 내놓고 파는 것은 못 봤다.

쌀을 다 사갈 수 있다는 말을 들으니까 마음이 흐뭇해지는 것이었다.

‘돈만 있으면 배불리 먹을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되니까 마음이 푸근해졌다.

 

김만철 선생 탈북기 제24화 PDF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