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여의도 아파트 아무집이나 들어가서 집구경을 했다

무작위로 들어간 아파트에서 남조선 사람들의 실상을 알 수 있었다

단장은 쌀가게를 돌아본 후 “김 선생, 어디를 또 가보고 싶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믿기지 않는 현실을 다시 확인하고자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에 가봅시다”라고 대답했다.

단장은 우리 식구들을 데리고 여의도 63빌딩으로 갔다.

“먼저 한국에서 제일 높은 빌딩을 구경하고 다음에 선생이 원하는 곳을 가봅시다”라고 하였다.

멀리서 보이는 63빌딩은 햇빛을 받아 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남조선 사람들이 이렇게 높은 빌딩을 짓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전망대에 올라 망원경으로 서울 시내를 들여다봤다.

처남과 아이들은 고층빌딩이 즐비한 서울의 광경을 바라보고 감탄을 연발하였다.

하지만 난 덤덤했다. 왜냐하면 나는 먹고 살기 위해서 탈북 했으니까 진짜 남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사는지 궁금했다.

내 눈으로 거지들만 득실거린다는 말이 틀리다는 것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김신조나 이웅평이 말대로 남조선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고 산다는 말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63빌딩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여의도 아파트단지를 보고 단장은 저기를 아파트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층층이 집을 지어서 살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아무 아파트나 들어가 보자고 하였다.
그래서 아무 아파트나 찍어서 갔다. 단장은 “어느 집이건 마음대로 들어가 보시죠? 몇 층까지 올라가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몇 층이고 아무 층에나 갑시다” 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마 10층 이상 올라간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벨을 누르니까 “누구세요?” 하면서 문을 여는데 육칠십 돼 보이는 할머니였다.

그 할머니는 “어떻게 오셨습니까?”라고 하였다.

단장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깍듯이 하더니 “이 동네 사는 사람입니다. 들어가서 집구경을 해도 되겠습니까?” 하였다.

“우리 며느리가 있어야 되는데… 그리고 아들도 올 시간 됐다”고 말하면서 머뭇거렸다.

단장이 “하여간 들어가서 집구경 좀 할게요”라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단장은 북한에서 온 분들인데 남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려고 왔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냥 요 동네에서 왔다고 말한 것 같았다.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이것 저것 둘러보고 있었는데 집주인으로 보이는 며느리와 아들이 들어왔다.

그들의 나이는 한 사십쯤 돼 보였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러자 단장은 일어서더니 그들의 귀에다 대고 뭐라고 말하였다.

아마 자기는 안기부에서 왔으며 왜 왔는가를 얘기해 주는 것 같았다.

그 말을 듣자 부부는 “아, 그러시냐”고 하면서 몸을 굽실굽실 하였다.

그때만 해도 안기부는 되게 무시무시한 곳으로 생각할 때였다.

집주인 남자가 “뭘 알고 싶으십니까?”라고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쌀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자기 부인에게 “쌀이 어딨어?”라고 물으니 부인이 “베란다 옆 창문 옆에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리로 가보니 쌀 두 마대가 놓여 있었다.

80킬로 짜리 두 마대였다. “쌀을 좀 봅시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무거운 걸 낑낑 거리면서 둘이서 땅에다 내려놓고 보여주었다.

아주 좋은 쌀이었다.

나는 “이게 다 동무네 거요?”라고 물어봤다.

“예?” 깜짝 놀라면서 집주인 남자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아주머니가 말을 알아듣고는 벌벌 떨면서 “예, 우리 겁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북한에서 왔구나’라고 감을 잡은 모양이었다.

내가 북한 말하지 안기부에서 왔지 하니까 눈치 챈 것이었다. ‘

80킬로 한 마대만 가져도 한 달은 넘게 넉넉히 먹겠는데 무작위로 들어간 집에서 쌀을 두 가마나 사다 놓고 있으니 남조선은 쌀이 많이 있는 모양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집을 구경한 후 날이 어두워져서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 식구들은 대방동 안가에서 한 달 넘어 있었다.

안가 옆집이 멋있는 기와집이었는데 동양시멘트 공장 회장집이라고 하더라.

아래층에는 안기부 사람들이 살고 위층에 우리가 살았다. KAL폭파사건으로 유명한 김현희도 우리 집에 한번 왔다갔다.

내가 김현희보다 몇 달 먼저 남조선에 왔는데 김현희가 오니까 안기부 사람들이 김현희 회유하려고 우리 식구들을 만나게 한 것이었다.

김현희는 우리 식구들 보더니 고향사람 만났다는 생각에 그런 것인지 우리 집사람을 안고 많이 울었다.
그날 저녁에 밥을 먹고서 단장은 “내일은 좀 멀리 갑시다.”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한 가지 빼먹은 게 있다.
대만에서 한국으로 갈 것인지 아닌지 아직 결정을 못한 상태에서 누님을 만나면 누님의 말을 듣고 가부를 결정하겠다고 하였었다.

설마 누님이 동생에게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대만을 떠나기 전에 누님을 여기서 만나고 가겠다고 했었다.

해 넘어갈 즈음 대만으로 한국 비행기가 왔다.

그래서 “우리 누님 만나야 가지 갈 수 없다”고 하였다.

“누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은 확인이 되었지만 전라도 영광에서 이곳에 오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서울에 가게 되면 틀림없이 만날 텐데 뭐 그렇게 고집부리십니까.

여기서 만나나 서울에서 만나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오히려 서울에서 만나면 번거롭지 않고 좋지 않습니까.

비행기가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행기에 타십시오” 하여 비행기를 타고 온 것이었다.
서울에 온 첫날은 기자회견이다 뭐다 바쁘고 경황이 없어서 누님을 만나지 못했고, 안가에 가서 이틀 후 조사를 받을 때 누님을 데려오라고 그랬다.

그때까지도 안기부에서 말하는 것 다 거짓말인 줄 알았다.
프레스센타에서 누님을 만났다.

말 몇 마디 안 해서 누님인 줄 알았다.

핏줄은 역시 다른 것이다.

금세 통하는 것이었다.

누님은 전라도 말을 써서 말하는 거 잘 못 알아들었다.

김동건 아나운서가 통역해 주었다.

누님은 16살에 전라도 함평으로 시집갔다.

그 후에 부친께서는 일제의 추적을 피해 만주로 떠났고, 이후로는 소식도 모르고 그렇게 지냈다.

부친께서는 통일이 되면 누님을 꼭 찾아보라고 당부하셨다.

누님이 나를 보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정말 잘 왔다고 했다.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느냐며 우셨다.

난 누님에게 딱 한 가지 물어보았다.

“누님, 쌀이랑 많이 줘요”

누님은 “여기 살기 좋다. 김일성이가 남한 사람 거지라고 한 말은 다 거짓말이다.”라고 하였다.

누님의 말을 듣고 남한에 오기로 마음을 굳혔던 것이다.

 

김만철 선생 탈북기 제25화 PDF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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