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허름한 집에 들어갔는데 개밥에 고기가 있는 것이 보이자

개밥그릇에 쌀밥과 고기가 있는 것을 보고 남조선 생활이 넉넉함을 알 수 있었다

어젯밤 단장이 말한 대로 여의도 아파트에 갔다온 다음날은 아침 일찍 대구 쪽으로 출발해서 내려갔다.

대구에 점심시간 전에 도착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살펴봤다.

물론 관광을 온 게 아니니까 명승지에 간 것이 아니었다.

내게는 남한 사람들의 생활이 어떤가가 궁금했다.

단장은 대구에서도 쌀가게로 우리들을 데려 갔는데 대구도 서울과 쌀가게의 형태는 비슷했다.

또한 서울만큼이나 그 숫자가 많이 있었다.

점심 때쯤 되어서 단장은 대구시 변두리 달동네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일부러 못 사는 데로 갔던 것이다.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언덕에 작은 집들이 가득한데 “여기 한번 들러볼까요”

단장이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차를 내렸다.

나는 단장을 따라가지 않고 소변보러 간다고 하고는 일행과 다른 곳으로 들어섰다.

안기부 사람들 따라다녀서는 확실하게 사는 모습을 확인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단독행동을 했던 것이다.

물론 단장이 방문할 곳을 미리 짜놓고 모든 것을 연출하지는 않았지만 의심이 많은 나는 그래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골목길을 들어서서 한참 가니 내가 보기에 살기가 어려워 보이는 집이 있었다.

그 집은 지붕이 낮았는데 낮은 처마 밑에 추녀가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고무신이 한 켤레 토방(마루)에 놓여 있었다. 문을 똑똑 두드렸다.

안에서 “누구요”라는 여자의 말이 들려왔다. “문 좀 열어 보시라오”라고 하자 안노인(할머니)이 문을 빼꼼히 열고는 “어데서 왔능교?”라고 물었다.

“서울에서 왔음매” 했다. 말투가 이상하니까 할머니가 의아해 하면서 내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기에 “젊은이들은 없음매?” 물었더니 “다 일 나갔지요”라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식구는 몇입니까?” 하니까 “아들하고 며느리 손자가 있는데 다 일 나갔다”고 하였다.

나는 다짜고짜 방으로 들어갔는데 때가 점심시간이 지난 때라 이 노인이 점심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찬장을 쓱 열어봤더니 밥이 하나도 안 보이는 거였다.

그러자 그 노인이 “왜 남의 집 찬장을 열어보시오?”라고 불쾌해 하며 말했다.

“어머니, 내가 궁금해서 열어 본 겁네다”

그런데 내 눈에 냉장고가 보였다. 당시 북조선에서는 냉장고는 간부들이나 병원 같은 기관 이런 데에서 쓰지 평민들 집에서는 아예 없었고, 냉장고가 뭔지 평민들은 모르는 사람들이 허다했다.

“냉장고도 좀 열어봅시다”
냉장고 안에도 밥은 없었다.

채소와 반찬통은 있는데 밥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노인이 점심도 못 잡쉈겠다.

아주 어려운 모양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연민(憐愍)이 스쳐 지나갔다.

아마 오후 1시 가량 되었는데 ‘안됐구나’ 하면서 바깥으로 나와서 집 생긴 꼬락서니를 쳐다보는데 강아지가 옆에서 낑낑거렸다.

그런데 개집 앞에 양은그릇이 놓여있는데 개밥그릇인 모양이었다.

개밥그릇에 쌀밥이 가득하게 있기에 얼른 집어서 냄새를 맡아보았다.

개밥은 쉰내도 나지 않았고, 심지어 고기도 있었다. ‘개가 쌀밥을 먹을 정도고, 개밥이 쉬지도 않았으며, 고깃국을 줄 정도면 사람이 전혀 굶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저 노인도 굶지 않고, 고깃국에 밥을 먹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돌아갔다.

혼자 일행과 떨어졌다가 이 정도만 파악하면 됐다싶어 무리로 돌아오니 단장이 “어디 갔다 왔느냐”라고 물었다.

“화장실에 갔다 왔수다”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볼일을 봤냐”라고 물었다.

화장실 간다고 나간 사람이 한참 동안 안 오니까 찾았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좀둘러봤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단장님 이제 그만 숙소로 돌아갑시다”라고 말했다.

“왜 더 둘러봐야죠?”

“아! 볼 거 다 봤습니다”

내 말을 듣고 단장은 의아해 하면서 “선생이 돌아가자고 하니 그만 갑시다” 하면서 서울로 올라왔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단장한테 “단장님, 이제 나들이 그만 합시다”라고 말했다.

단장은 나를 쓱 쳐다보더니 “오늘도 대구에서 그만 보고 돌아가자고 하시더니 왜 그러시죠?

남한 사람들 생활에 대한 거를 자세히 봐야 어떻게 사는 것을 파악할 수 있지 않습니까? 시간은 많은데 며칠 더 다녀봅시다”라고 하였다.

“됐습니다”

그렇게 말하고서는 혼자 들어가 파악해 본 집에 대해서 말했다.

“점심 때인데 찬장과 냉장고 안에도 밥이 없기에 그 노인이 굶은 줄 알았는데 개밥에 고기가 있더라” 하니까 단장이 내 손을 딱 잡으면서 “참 속속들이 잘 보십니다.

그럼 이제는 그건 그만 보고 구경이나 합시다” 하였다.

그래서 늘봄공원이라는 불고깃집에 가서 고기도 먹고, 여기도 가 보고, 저기도 가 보고, 남산 타워에도 올라가 보았다. 하지만 별로 기억에 남는 곳은 없다.

먹을 거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먹고 싶은 거 다 얘기하라고 해서 “우리 달걀을 좀 먹었으면 한다” 했더니 저녁마다 달걀을 쪄다 주고 했다.

그 쪄다 주는 몇 알씩 먹고는 성에 안 찼다.

그래서 한 바께스씩 삶아서 먹었다.

남한에서는 제일 쉽게 먹을 수 있는 게 달걀이지만 북한에서는 거의 달걀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만철 선생 탈북기 제26화 PDF

온세계 만방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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