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육지로 흘러 들어가다

표류하기 시작한 지 몇 시간이 흘러갔다. 왜 이리 시간은 더디 흘러가는지…
캄캄한 밤에 파도만 수없이 와 부딪쳤고, 식구들을 쳐다보니 퀭한 눈에 불안감이 비쳤다.
이러다가 어떻게 될 것인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생각으로 이겨나갔다.
그때 마침 큰 배 한 척이 멀리서 지나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살려주세요’ 하는 마음으로 식구들과 같이 깃발과 옷을 있는 힘을 다해 흔들었다.
우리를 발견했는지 서서히 그 배가 다가오더니 가까이 와서는 갑자기 속력을 높이더니 휙 지나쳐 버리는 것이었다.
아마도 북조선공화국 깃발을 보았던 모양이다. 허탈했다.
날이 어슴푸레 밝아왔다. 1월 20일 새벽이 되었다.
저 멀리 육지 같은 게 가물가물 보였다. 한 두어 시간 후 해가 떠올라 사방을 밝히니 멀리 육지가 똑똑히 보였다.
보통의 표류자라면 육지가 보여서 안도감이 들었을 테지만 우리는 달랐다.
일본놈들을 악질반동으로 알고 있던 터라 꼼짝없이 죽었구나 싶었다.
마지막 발버둥치는 심정으로 망원경을 통해 앞을 주시하다 보니 육지에서 큰 무역선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혹시나 우리쪽으로 오면 도와달라고 해야겠다고 하였는데 우리 쪽으로 오지 않고 남쪽으로 가버렸다.
덕분에 그 무역선이 나온 지점이 항구라는 것을 짐작하였다.
육지가 가까워지니 수심이 얕아지게 되어 닻이 바닥에 닿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암초에 배가 좌초될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갈증이 한계상황까지 왔기 때문에 무슨 조치를 취해야만 했었다.
그래서 닻을 끌어올리려고 했는데 힘도 없고 이제는 필요치 않았기 때문에 그냥 도끼로 끊어버렸다.
그리고는 남아있던 엔진 하나로 시동을 걸고는 조금 전에 봤었던 항구라 생각되는 지점을 향해 천천히 이동하였다.
엔진 하나로 움직이니 속도를 낼 수는 없었지만 얼마 안 가서 항구에 도착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름이 ‘후꾸이항’이었다. 부두 중앙 부분에 큰 무역선이 한 척 있었는데 물을 싣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출항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방파제 쪽으로 가까이 가면 영토 침범의 오해가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에 먼저 무역선 가까이 접근했다.
큰 배에 작은 배가 접근하면 통상적으로 구조 요청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하였다.
우리 배가 무역선 가까이 접근하면서 보니 실로 엄청나게 큰 배였다.
큰 배에는 보통 갑판당직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역시나 이 배에도 갑판당직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밧줄을 높게 던지니까 그 갑판당직이 순순히 밧줄을 잡더니 어딘가에 고정을 시켰다.
그러고 나서 우리 배를 보더니 웬일인지 화들짝 놀라면서 도망을 가버리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 배 앞쪽에는 시뻘건 공화국 깃발이 꽂혀 있었기 때문인데 그것도 넓이가 1미터나 되는 큼직한 것이었다.
생사의 기로에 있었던 터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깃발을 떼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자기를 죽일 것을 알면서도 구조요청을 하면 도와주는 것이 바다 위에서의 생리인지라 그 갑판당직도 우리의 구조 손길을 뿌리치지는 못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무역선 위로 올라가야 하겠는데 가만히 보니 20미터 옆쪽으로 사다리가 내려져 있기에 우리가 던진 밧줄을 슬슬 풀면서 사다리 쪽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처남 2명을 데리고 무역선 위로 올라갔다.
올라가보니 갑판당직은 물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선실 쪽으로 한참을 걸어갔다(아마도 150미터 정도 거리로 여겨졌다). 그런데도 그 때까지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도대체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선실에 도착해서 문을 열었는데 다행히 문이 잠겨있지는 않았다.
마침 그 안에 몇 명이 있었는데 그들의 얼굴을 보니 겁에 질려있는 모습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들을 해적으로 생각한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 그럴 만도 하였다.
왜냐하면 귀까지 내려오는 군용모자에다가 얼굴에는 기름까지 묻어 있고 또 내 모자에는 그때 계급이 중좌(중령)라 별이 2개 달려 있었으니 충분히 오해를 살 만하였다.
거기에다가 작은 처남은 긴 사시미 칼을 허리에 차고 있었으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중에 작은 처남에게 칼을 왜 차고 갔느냐고 물어봤는데 엉겁결에 그냥 허리에 차고 갔는데 뭐 그리 힘을 쓰겠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안에 있던 사람 중에 선장으로 짐작되는 사람이 우리가 접근하자 뒷걸음을 자꾸 하면서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작은 처남이 차고 있는 사시미 칼을 보는 게 아닌가.
그래서 칼을 무서워하는 것을 눈치 채고 작은 처남에게 칼을 빼서 밑에 내려놓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선장에게 말이 통하지 않으므로 몸짓으로 우리의 의사를 표현했다.
칼로 목을 자르지 않는 시늉을 하면서 “칼로 찌르는 것을 안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고, 한자로 물 수(水)자를 써서는 “물이 필요하다”고 주전자를 가리키면서 알려줬다.
그랬더니 “아, 소까! 소까!”하면서 아랫사람을 시켜서 컵에 물을 따라 주었다.
한 잔씩 물을 얻어먹고 갈증이 없어진 후에 내가 선장에게 말했다. “절대로 죽이지 않는다.
우리는 북한 청진에서 왔다.
”이렇게 말하면서 해도(海圖) 탁자에 표시된 청진을 가리켰다.
그랬더니 그 선장이 “아, 소까! 세이신~” 이렇게 말했다. 청진을 일본말로 세이신이라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
또, “목데끼? 목데끼?” 하기에 ‘목적지’라고 알아듣고 “나는 저 대만해협을 지나, 필리핀 군도를 지나서, 저 멀리 인도네시아”라고 지도를 가리켰더니 그 선장은 “인도네시아!!”를 외치며 놀랐다.
그리고 계속해서 나는 그 선장에게 요런 조무래기들이 하면서 요런 것들이 요런 것들이 합쳐서 11명 된다고 손짓 발짓을 해가며 설명했더니 “아, 고도모! 고도모!”하면서 이해를 하게 되었다.
또, 그 동안 물을 먹지 못해 죽게 되었으니 물 좀 싣고 가게 달라고 했더니 선장을 포함하여 선원들 모두가 자기들을 죽일 놈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안심을 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얼마나 물이 필요하냐고 물어 와서 1톤만 달라고 했더니 0.5톤을 주겠다고 했다.
얼마나 깍쟁이들인지 1톤도 깎아서 준다는 것이었다. 보통 큰 배에는 100톤도 넘게 물을 싣기 때문에 1톤은 아무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감지덕지한 터라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아랫사람들에게 지시를 하자 호스를 길게 빼더니 우리 배에 물을 넣어주었다.
선장은 전화를 가리키면서 전화하면 당신들 손에 수갑 채워 잡혀간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룻밤 자고 나면 우리는 떠난다. 그리고 만약에 전화해서 누구라도 오기만 한다면 우리 배에서 사람이 올라와 총으로 뚜루루 하고 다 쏴서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