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산 년 만에 새집으로 이사 간 처가식구들

처가식구들을 우리 집에 데려온 후 청진시 당위원장에게 말해서 이사 허가증을 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살 집이 문제였다. 대한민국처럼 이사 갈 집을 구입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주는 집에서 살아야 하는데 주택난이 심각한 북한에서 언제 집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몰랐다.
할 수 없이 우리식구들 7명과 같이 살아야 했다. 그때는 막내 광호가 갓난아기였고 광숙이가 코흘리개 어린애였다.
하모니카 주택에서 10식구가 살다
우리 집은 방 둘에 광(창고)과 부엌이 있는 하모니카 주택이었다. 보통 결혼할 때에 주택과에 신청하여 운이 좋으면 방 하나에 부엌 하나 딸린 주택을 3~4년 만에 받는데 나는 은사인 청진의대 김덕명 선생이 힘을 써줘 결혼할 때 방 2개에 부엌과 광이 딸린 주택을 1년 반 만에 받을 수 있었다.
하모니카 집은 가로 6미터 세로 3미터짜리 주택인데 반을 나눠서 방 하나를 만들고 나머지 부분에 부엌을 설치한다. 그러니까 우리 집은 이런 주택의 두 배라고 보면 된다. 물은 공동 수도를 사용하고, 화장실도 공동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당시에는 땔감으로 석탄과 무연탄을 썼다.
아파트를 배정받을 수도 있으나 당시 대개의 아파트는 10층 이하로 거의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아파트에 살게 되면 석탄이니 모든 것을 짊어지고 올라가야 되기 때문에 하모니카 주택보다 살기가 편하지 않았다.
북한에서는 집을 새로 배정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번 집을 배정 받으면 특별한 경우 외에는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살아야 한다. 우리 처갓집처럼 이사 온 경우에는 새 집을 배당받을 수 있다. 또한 결혼한 후 애를 낳아서 식구가 다섯 명 이상이 되면 방 2개 이상의 주택을 신청할 수 있으나 언제 배정을 받을지는 모른다.
나는 곧바로 주택과에 집을 신청하면서 빨리 집을 배정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주택과 지도원은 주택이 부족하여 집이 나오려면 몇 년이 걸릴 거라고 하였다.
처가식구들 살 집을 구해서 이사 온 게 아니라 무작정 왔으니까 광옥이와 광숙이가 쓰던 방을 빼서 처남 식구들 살게 해주고 광을 치우고 창고 겸 방을 딸들이 사용하게끔 했다. 광숙이가 쓰는 방은 방이라고 하지만 광을 개조한 것이라 볕도 잘 안 들고 습기가 차서 눅눅했다.
처남들에게 방을 양보하다보니 광옥이와 광숙이가 볕도 안 드는 방에서 고생을 했다. 나중에 광숙이가 구루병에 걸린 것이 이 또한 하나의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니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처갓집 식구들이 우리 집에서 3년을 같이 살게 되었는데 좁은 집에서 3년을 10식구들이 불편을 감수하며 살게 되니 ‘빨리 처가식구들 집을 하나 장만해 줘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북한의 주택 제도
북한은 개인이 집을 짓거나 소유할 수 없고 국가가 필요한 사람에게 배정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이 적어 항상 주택이 부족한 형편이다.
주택을 전문적으로 건설하는 사업소가 있으나 사적지(事蹟地), 사적비, 사적관 등 김일성 우상화 작업에만 치중하는 바람에 일반 주택 건설은 항상 뒷전에 놓인다.
북한에서는 주택을 국가가 주기 때문에 시-도-군 인민위원회 주택과에 주택 배정을 신청하면 접수순서와 사정이 급한 순서를 고려해 주택을 준다. 결혼 이사 등에 따라 주택을 신청할 수 있지 나머지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다보니 집을 배정 받기 위해서는 주택과에 뇌물을 주거나 힘을 많이 써야 된다.
북한의 주택은 특호에서 4호까지 5등급으로 나뉜다. 특호주택은 당과 정무원 부부장급, 인민군 소장 이상 고위간부들이 차지한다. 특호주택은 고급 단독주택 형태로 면적이 150-200㎡ 정도이다. 4호 주택은 100㎡ 내외의 고층아파트로 중앙당이나 행정부 과장급, 지방당 국장급, 인민배우 등에게 배정된다.
2-3호 주택은 50㎡ 정도로 3호 주택은 중앙기관의 지도원 등이, 2호 주택에는 도급기관 지도원 등이 살게 된다. 일반 근로자와 농촌지역 주민들은 33㎡ 정도의 1호 주택을 배정받는다.
1호 주택은 하모니카 집(우리의 연립주택 형식)으로 공동 화장실과 공동욕실을 써야 한다. 방 하나에 부엌이 달린 집들이 단층으로 3~4 채씩 연이어 붙은, 북한식 연립주택이다. 대개 신혼부부나 식구가 3명 이하인 가족들이 산다.
농민들에게는 김일성의 특별 교시에 의해 1가구당 30㎡ 텃밭을 준다. 농민들은 식량을 배급받는 거 외에 텃밭에 먹거리를 심어 먹을 수 있어 일반 노동자들보다는 생활이 조금 낫다.
뇌물로 우리집보다 훨씬 큰 집을 마련해 주다
북한의 주택 사정이 이렇다보니 좀체 처가식구들을 독립하여 집을 장만해 주기 어려웠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보니 마침 우리 집 옆에 집을 새로 하나 짓고 있었다. ‘옳다구니 잘됐다. 이집을 장모님이 사실 수 있도록 해드려야겠다’ 생각하고는 주택과 소관이니까 청진시 청남 구역 주택과장을 찾아갔다.
주택과에는 여러 명의 지도원들이 있지만 그들에게 청탁하는 것보다 주택과장에게 하는 게 약발이 더 잘들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주택과장은 대학병원에서 진료해 준 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맨입으로는 안 되니까 녹용을 줘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슴목장 지배인(총책임자)을 찾아갔다. 그 지배인도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옛날에 약학과 졸업한 대학 동기와 같이 녹용주사를 개발할 때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 지배인과 친분을 쌓았었다. 이런 사정을 얘기하고 녹용 한 쌍을 달라고 부탁하니 사슴목장 지배인은 “의사 동무는 처가사랑이 엄청나구먼. 그거 하나 폐기했다고 하면 되니까 한 쌍 드리지” 하였다.
북한에서 꽃사슴 녹용 얻기는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 마침 발이 닿아서 녹용을 얻을 수 있는 거지 아무나 녹용을 얻을 수는 없다. 꽃사슴 뿔은 크지는 않지만 일반 사슴보다 반토꾸리 함량이 훨씬 높기 때문에 약효가 좋아 매우 귀하게 본다.
그걸 한 쌍 얻어다 주택과장한테 주니 얼른 집을 해주었다. 북한은 모두 국가의 소유이고 자기 거 아니니까 뇌물이 잘 통한다.
그 후 나는 집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주택과장에게 힘을 써서 여러 사람 집을 마련해 주기도 하였다.
우리 집에 온 지 3년 만에 장모님과 처남 둘이 큰 집으로 이사를 가니 너무 너무 좋아하였다. 새 집은 하모니카 집도 아니고 단독주택으로 면적이 48㎡ 정도 되니 우리 집보다 약 4평가량 크고 훨씬 좋았다.
“내가 사위 하나 잘 두었다”고 하면서 매우 기뻐하시는 장모님을 보니 마음이 참 흐뭇하고 좋았다.
